아놔.. 마음이 무거워진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마태복음 병행구절을 보자. 21:12 이하. 요한복음 2장과 마태복음 사건의 특이한 점은,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라고 인용구절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사건이 그 분만이 하신 사건이 아니고 예전에도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서 갖는 핵심이 있다. 과거의 사건을 추적해보아 과거의 사건이 어떤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핵심


역대하 34:1

요시아 왕은 유다 말기의 왕이다. 요시아 왕 이후에 몇 왕 지나지 않아 망한다. 36장에서 바빌론에게 망하는데, 34장에 요시아 왕이 나오니 이스라엘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행한 선왕이다. 어떻게 우상들을 제하여 버렸는가가 나온다. 8~13절은 성전 수리 내용이다. 이 성전을 수리하다가 성전 안에서 여호와의 율법 책을 발견한다. 그 책을 읽고 요시아 왕이 더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더 깊이 복종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킨다. 


그러나 예레미야 7장을 보면, 예레미아의 무서운 경고가 나온다. 요시아 왕이 지금 성전을 수리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게 만든다. 여호와의 절기를 진심으로 지키고 성전에 모이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 때 예레미야를 보내서 이상한 말씀을 경고케 하신다.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이곳이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한 쪽에서는 왕이 선두에 서서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회개케 하고 전심으로 주를 따르게 하는 개혁 운동이 일어난다. 얼마나 진심어린 일들이었는지가 역대하 34장에 잘 나타나 있다. 성전을 수리하라 그랬더니 12절에 보면 진실히 그 일을 했다고 한다. 35장에 가면 유월절 지키는 문제에서, 자기 처소에 가서 섰다는 것은 자기 일을 제대로 했다. 군기가 엄정하다는 뜻이다. 15절, 이스라엘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모습. 18절,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만큼 유월절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더라. 유월절을 잘 지켰다고 성경에 나온다. 온 백성이 요시야 왕을 위시해서 얼마나 많은 감격과 희열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 와중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서, 재건하고 있는 성전에 가서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을 들어가는 유대인들아 들어라,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이곳이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라고 하는 무서운 말을 하신다. 


대체 무슨 말인가? 한 쪽에선 잘 하고 있는데 한 쪽에선 경고를 하는 당파 싸움 같은 양상이 왜 일어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5절 이하의 말씀을 상기해보자.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해서 과부, 무죄한 죄, 고아 잘 돌보면 이 곳에 영원히 거하게 하리니.. 도적질, 살인, 간음, 거짓맹세, 우상숭배 하면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말을 가증한 일이다.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곳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냐. 성전을 수리하고 성심껏 수리하는 사람들을 향해 왜 도적의 굴혈이라 하는가? 너희가 여호와의 전이라 입으로 시인하면서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헛된 말이 된다. 무익한 거짓말이 된다. 너희가 도적질, 살인, 간음, 거짓맹세, 우상 숭배를 하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는 들어온다.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 하는가?


딴 짓 실컷 해놓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와 제사나 지내고 있으면 구원을 얻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8절.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한다. 도적질, 살인, 간음, 거짓맹세, 우상숭배하면서 내 전에 들어와 제사만 지내면 우리는 괜찮다고? 이제 확실해졌지? 이것이 도적의 굴혈이 됐다는 뜻이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악을 쓸만한 시점이 왔다. 목청을 가다듬고 ㅋㅋㅋ 심각한 얘기다. 어떻게 도적질이 되느냐 하면, 여호와의 전에 나오는 것과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고 그의 기쁨, 싫어하는 것을 나의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21절 가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고,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너희는 나의 모든 명한 길로 행하라. 그러면 복을 받으리라. 너희 희생의 번제물을 아울러 고기를 먹으라. 너희가 바친 제물 니가 쳐먹어라. 니가 제사한 고기 바치고 이제 딴 짓하지 말고. 제사 바쳐 놨다고 딴 짓한다 이제. 내가 언제 제사 바치라고 했는가? 제사 드리지 말고, 그냥 니가 쳐먹고 말을 들어란 말이다 말을. 희생 제물 바쳐놨더니 할 거 다했다고 이제 딴 일 하더란 것이다. 내 말을 들으라고 그랬지. 먼 말인지 알아듣겠는가? 내가 고기 못 먹어서 영양실조 걸렸냐. 제물 바쳐 놓고 다른 짓 하는거다. 7:10보라.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않으신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다하면서 하나님은 제물 바쳐서 입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놔둘 것 같으냐, 그 경고다. 이건 우리 현실에도 아주 적용이 된다.


교회는 강대상의 권위가 있으려고 한다. 성가대, 장로님, 이건 권위의 상징이 아니다. 봉사직이다. 교회가 어떤 짓을 할 수 있는가? 장로를 사고팔 수 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아서 이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앞으로 그런 짓을 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우리 교회서 그러지 않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장로님들이 장립식할 때 선물 안 받는게 참 기분 좋다. 다른 시중에 있는 교회 가보면 장로 장립할 때 한탕 해낸다. 장로 시킬 때, 장로되면 기천만원 내게 되있다. 교인들이 장로를 뽑을 때 영적지도자를 뽑는게 아니라 누구의 주리를 틀어서 평소에 할 수 없는 한탕 털어낼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장로 왜 시키나, 시켜서 한 번 왕창 받는거다. 장로들은 왜하나? 죽을 때까지 자자손손 울궈먹는 직분이다. 아 좋다. 뭐 뜯어먹을만큼 뜯어먹어라 뜯어먹히고 평생 영원무궁, 백두산과 동해물이 마르고 닳도록 울궈먹는거다.


도적의 굴혈이 아니고 뭔가 이게. 자행되고 있다. 교회 목사가 어떤 집에 갈 수 있고 없느냐 그런 근거는 없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게 목사를 부를 수 있는 집은 어떤 집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 중에 있다. 여러분 집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목사를 부르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장로를 불러야 한다. 장로는 말 그대로 세상적으로, 인생과 인간을 보는 눈에 있어서 지혜와 경험이 있는 분이다. 목사에 비해 장로의 기도가 영험이 있다. 목사는 기도가 아니라 말씀을 이해하고 가르치는데 좀 낫다. 전문적으로 이건 배웠으니깐. 3-4천년 된 얘기를 장로가 하나 목사가 하나 차이가 없으나, 인생 문제는 1년 다르고 한 달 다르다.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근데 왜 자꾸 목사를 부르나? 뭔가 더 나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사를 불러서 봉투를 준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무슨 접경선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공증을 쎈 걸 한다. 많이 드릴 수록 가장 확실해진다. 이런 것 때문에 정당한 영적인 문제가 대두되지 않고 쓸데 없는 장사하다가 서로 다 망하는거다. 한국교회의 욕먹어 싼 일들 중에 목사로부터 시작되는 일이 많다. 


요즘 사우나 얘기 나오는 것과 같다. 욕 들을 것 같으면 안 가면 될거 아닌가? 정 불쾌하면 골목에 숨어있다가 패면 될 것 아닌가? 목사는 교인들이 돈 안 주면 먹고 살게 없단 말이다. 자동차 양복 사주지 말란 말이다. 우리의 모든 근거 밑바닥에 말하자면, 하나님을 경배의 제 1차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제1 원인이 되어있는가 우리는 상거래를 하고 있는 도둑놈, 해적, 산적이다. 


우리가 늘 한시도 까먹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 하나님 눈 앞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 외에는 관심 둘 것 없어야 하는 인생이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성전을 헐자고 한다. 원체 도움이 안되니까 성전을 헐어버리자는 거다. 개신교가 천주교에서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성전을 헐기 위해서였다. 교회는 성전이 아니고 개뿔도 아니다. 목사랑 만나야 뭐 실감나고 기도를 받아야 나아보인다. 이런 무식한 이야기들이 통용되니까 사기꾼들이 횡행한다. 이 세상 가장 큰 사업은 교회다. 장로하고 목사하고 한 3명 모여서 짜고 헌금 내라고 긁으면 뭐, 그 이후로 세금을 내나 뭘 하나.


어떤 교회 공동의회하는데, 이렇게 설명한다. 목사님과 장로님이 회의한 걸 통과시켜주는 뎁니다. 이러고 있다. 목사는 굉장히 무서운 직군이다. 안 해야 한다. 그런데 부름을 받으면 두려움을 갖고 해야 한다. 누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들이 그 직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인식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이익을 받지 않고 손해를 보고 있다.


말라기 1장

구약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안타까운게 있다면 하나님을 이름을 들먹이면서 모독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한 번도 권위있게 선포되지 않고 협잡 모리배들이 모여서 자기의 이익과 탐욕을 채우기 바쁜 싸움과 장사치들의 소리치는 험화로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인정하는 지점이 어디인가?


예레미아7장

16절, 그런즉 너희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간구하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을 결심했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생활을 영위하고 있나? 무엇을 위하여 땀을 흘리고 무엇을 가장 두려워 하는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나님께 정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가르치는가? 아니지 않은가?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면 선행을 하라.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돌보라. 우리는 조금이라도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과 친하려고 노력하는게 현실 아닌가? 돈을 꾸어줘받자 받지 못하는 사람을 섬겨야 한다. 이 세상이 갖고 있는 힘, 물질과 이 세상의 권세를 탐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가 누구인가를 증명하지 않으신다. 갖고 있는거 홀딱 다 까먹으라는 것 아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되 그것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 투자하지 말라. 주위의 다른 사람을 돌아보라. 생색내지 말고 돈주고 얼른 도망오라. 돈 없으면 한달에 한 번 도와주고 오라. 마음이 우러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이를 악물고 하라. 그걸 하지 않고 나와앉아있는 한, 십일조를 1억원을 하는한, 눈깔을 빼서 헌물을 한다해도 무의미하다. 와서 좋은 옷 입고 성가대의 성가를 듣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옳다, 지당하다고 하면서 돌아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요한복음 4:19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나는 집사, 십일조, 성가대이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게 아니다. 단 하나의 기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찾으신다. 우리 교회는 그런 실수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라서 기쁘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런 분위기다. 우리는 다행이다라고 할 때는 아니다. 8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인간들이 갖고 있고 늘 넘어지는 실수의 대목이기 때문에 우리도 경계해야 한다. 한 10년, 20년쯤 흐르고나면 무슨 실수가 여기서 싹틀지 모른다.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 놓을 것도 아니다.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