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 4천원, 뚝불 5천원

2009. 8. 19. 01:28
알바 두 달 째.

일을 시작했던 지난 달에는, 주로 조용하고 수더분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정직원 한 명은 사장의 대의를 거스르데 민감한 성격인지, 점심 때가 되면 우리에게 두 가지 메세지를 동시에 줬다.
- 먹고 싶은거 시켜도 되는데, 백반이 나을 거에요.

우리는 조용하고 수더분한 사람들이었기에, 그저 무심하게 백반을 먹었다. 그래서 백반은 한 때 닥백-닭고기 백숙이 아니라, 닥치고 백반-이라는 깜찍한 애칭까지 얻었드랬다.

그런데, 이 달로 접어들면서 몇몇 헌 사람들이 나가고 새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먹는 낙을 아는 동시에, 사장의 대의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우선시 할 줄 아는, 대인배들이었다.
- 먹고 싶은거 시켜도 돼.. 근데, 백반이 나을 거에요.

그들은 뒤엣말을 못 들었나보다.
- 난 뚝불!~
- 저는 제육덮밥이요!~
내가 먹어보지 못한 메뉴, 하지만 이들은 백반이 먹어보지 못할 메뉴.
어느 틈엔가 함께 백반을 먹으며 전우애를 불사르던 헌 사람들도 금방 물타기를 했지만 나는 새로운 대세에 대한 뭔가 모를 불편함을 느낀 터라, 이미 익숙해진 한 가지 메뉴 밖에 말할 줄 몰랐다.

맛없고맘편한백반 VS 맛있고불안한뚝불


왜 그네들은 이제와서 백반을 배신했을까?
그건 진정한 전우애가 아니었단 말인가?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면, 우리가 먹었던 반찬이 얼마나 잘못된 조리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인지, 그래서 얼마나 맛이 없을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며 우리의 수고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회사의 대의에 살신성인으로 참여했다는 것이 모두 무의미해졌다.. 고 나는 한탄했다.
그런데, 이런 나 자신을 보니 뭔가 켕긴다.

맘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백반말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뚝불을 선택할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
뭐지?
더 웃긴 것은, 이젠 백반을 먹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오늘 먹은 비빔밥은 양이 훨씬 많아서 급하게 먹어야 했는지, 나는 오후 내내 방귀와 트림을 달았드랬다.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