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성도

2013. 7. 19. 02:55

은행에서 또 전화가 왔다. 내 계좌 마이너스라서 정지해야겠단다. 


마음이 심란해졌다. 왜 우린 돈이 없을까라는 생각은 이제 별로 하지 않는다(아니 조금만 하려고 한다.). 다만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돈의 위력이 크다는 것만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예전, 그러니까 우리 아부지 세대는 지금보다 돈을 잘 몰랐던 게 아닌가 싶다. 왜냐면 그 세대들은 사업한다고 남의 돈 끌어쓰다 빚더미에 앉고 친구 사업한다고 보증 서줬다가 빚더미에 앉는 사례는 뭐 우리집 뿐만 아니라 아내의 집 얘기기도 하다. 넘 허술한 일반화의 오류인가 ㅋㅋ 자신의 꿈이나 친구 간의 정이 돈보다 귀한 때였던 듯 하다. 


근데 요즘 세대는 안 그렇다. 가난하게 살든, 부자스럽게 살든, 자신이 가진 돈 이내에서 사용하는 건데 누가 뭐라 그러나? 그런데 문제는 마이너스... 아, 난 왜 마이너스의 손인가. 마이너스의 손은 물건을 잘 고장내는 아내의 손인데.


이야기가 옆 길로 샜다.


그래서 난 전화 받은 그 날, 집에서 기도를 했다. 내가 의지하는 분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라 선포했다. 어떻게 보면 이 상황이 뜬금없이 결국 내가 돈 없는거 합리화하는거 아니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지금 내가 프랑스에서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실, 하나님을 현실에서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난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나도 모르는 용기가 생겼다.


그날 저녁에 친구들이 놀러왔다. 지난 학기 어학원 같은 반이었던 남자 두녀석. 이녁들이 맥주와 위스키를 사갖고 와서 울 집 베란다에서 삼겹살을 구워 맛있게 냠냠 했다. 근데 난 그만 위스키를 너무 많이 마신거다. 위스키라니! 오 성도여. 술 취하지 말라 했거늘.


위스키 이름이 잭콕이란다. 다음날 알았는데, 잭다니엘 + 코카콜라. 이건 그럼 폭탄준가? 


아.. 성도의 거룩한 삶을 살아야는데 엄한데서 엎어지는구나. 화아저씨가 얼마 전 에베소서 설교에서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일 중에 술취하지 말라는 구절을 말씀하시면서, 술을 먹어서 기분이 좋아져봤자 현실에서 아무런, 정말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그걸 왜 마시냐는 말씀을 하셨드랬지. 난 다음날 아침 띵한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절규했다. 아, 나는 정말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구나 싶었다. 이건 뭐,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 전날 드렸던 선포 기도는 베드로의 예수님 다짐과 다를바 없는 허풍이 섞인 기도 비슷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나나 베드로나 정말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말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일을 알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안다. 그런데 말이다. 정작 현실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른 채, 아니 사용해보기도 전에 두려워서 내가 그 문제로부터 회피해버리는 것이다.


회피, 회피, 회피, 악!~


내가 술을 들이킨 건 베드로의 3번 부인 사건과 다를바 없으며,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한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베드로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세월이 몇 년이고,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가출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을 알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찌질한 모습인 것이다. 적어도 내가 한 행동으로만 보자면 말이다.


그래서 은혜에는 내가 보탤 것이 없다요. 아, 오늘도 이렇게 나의 철저한 인간다움만 깨닫는 하루가 되었고, 오후에는 마침 무역회사에서 전화왔다. 알바 일거리 생겼으니까 다음주 부터 일하러 튀어나오라고. 하나님, 알겠다 오바.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