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티 맞이 설교 말씀
2013. 7. 19. 17:24아침부터 아내와 대판 싸웠다. 어제 밤과 오늘 아침에 걸쳐 난 레크레이션 준비를 해야 했거든. 오늘, 내일 교회 모임서 엠티간다. 나더러 레크레이션 하랬다. 써글.. 그래서 썩은 표정으로 레크레이션 준비하다가 결국 그것이 불씨가 되어 온 집안에 아내의 고함으로 활활 탔다. ㅋㅋㅋ
아, 삶을 살 때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잠시만 마음의 중심을 놓치면 정말 간단한 일들이 정말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난 말씀을 들었다. 어라, 남서울교회 38주년 기념 설교를 화아저씨가 하셨다.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속한 교회에 대한 내 마음가짐에 대해 반성했다. 아, 이걸 누구한테 어떻게 설명하냐규. 하지만 화아저씨는 내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엠티 이런거 왜 하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레크레이션까지 턱 내맡기게 되니 온 몸으로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나였지만 그래도 엠티 가야지.;; 온 세상을 환히 밝히는 일곱개의 금촛대를 가진 교회는 말이다. 힘으로 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나도 있으면 된다.
좀 비약인가? 좀 비약이긴 하다. ㅋㅋㅋ
그래도 엠티 가려면 이 정도는 세뇌해야. ㅋㅋㅋ
=================================
여기서부터 말씀(언제나 그렇듯이 오타, 비문, 오역이 대부분임)
가나안 성전 재건
성전 재건 후 십수년이 지나자 학개 선지자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건을 제안, 16년 만에 재건을 시작한다.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면서 부딪치는 온갖 어려움에 대해 학개 선지자와 더불어 스가랴 선지자를 하나님이 보내신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선지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소임과 부름이 있었다. 그러나 성전 재건과 관계해서는 두 명의 선지자들이 역할을 한다. 학개와 스가랴 두 사람. 성전 재건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겠는가.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1~6장에 걸쳐 8가지 환상을 스가랴에게 보여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환상과 비전, 혹은 꿈이 우리의 시대에도 필요한 때이다. 오늘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환상이 무엇인가?
본문상 5번째 환상. 계시와 환상에 나오는 7은 완전 숫자. 일곱개의 등잔은 완전히 밝힌다는 뜻. 모든 지역을 완전히 다 밝히는 일곱개의 등잔을 가지고 있는 순금 등잔대에 대한 환상. 일곱개의 등잔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역을 다 비추어 내는데 그 비추고 불을 밝히는 것을 감당해내려면 기름이 필요하다. 기름통으로부터 등잔이 7개의 관이 7개의 등잔을 비추고 있으니 49개, 풍성하게. 아무 부족함없이 풍성하게 각 등잔에 공급이 되어서 불을 밝혀 내고 있다. 어느 만큼 불을 밝혀내고 있나. 바로 옆에 감람 나무가 있는데 살아있는 감람나무로부터 계속해서 기름이 기름통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기름을 밝히는 일이 하루나 이틀에 그치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영원토록 불을 밝히는 순금 등대의 환상을 보고 있다.
무엇을 말하나. 스가랴 시대에 짓고 있는 성전에 대한 환상이다. 완공된 성전에 대한 환상, 교회에 대한 환상.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울 때 기대하시는 완성된 교회의 모습. 순금으로 만들어진 등잔대, 아무 섞인 것 없이 순전한 진리에 근거한 -세상과 이 세상에 타락된 왜곡된 가치가 섞여 있지 않은 - 순전한 정금, 생명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해서 그 귀한 진리를 배우는 성도들, 그 진리를 따라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행실이 있는 순금으로 만들어진 등잔대. 이것은 너무나 가치롭고 보배로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완성되어 있는 교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원래 교회의 아름답고 완전한 교회. 한 곳도 빠뜨림없이 모든 세상을 비추는 빛, 온 세상을 일곱개의 등잔으로 완전히 비추어서 밝혀내고 있는 교회.
그 기름이 한 번 두 번 태우고 반짝하는게 아니라 살아있는 감람나무로부터 끝없이 공급되고 영원토록 밝히는 복된 환상이 스가랴 말씀의 핵심이다. 교회는 너무나 존귀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순금으로 비유할 만한 것이다. 땅의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신령한 지혜와 지식과 생명의 말씀을 듣는 하나 밖에 없는 공동체이며, 그 성도의 행실과 삶을 통해서 빛과 소금으로 드러난다. 성령의 끝없이 공급되는 은혜를 따라 세상을 밝히는 너무나 복된, 생명 공동체가 교회이다. 교회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축복하시고, 순금으로 비교될 수 있는 교회이다. 우리는 몸 담아 사는 이 조국 땅에서 교회를 향한 언론과 방송에 끝없는 공격과 모순과 죄에 대한 공격을 받고 있어서 참 부끄럽다. 목사로서 이 모든 허물에 주된 주범 중에 하나가 나와 같은 목회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온 세상이 교회를 지탄할 때 부끄럽고 죄송하기 짝이 없다. 목회자와 중직자 사이의 불필요한 싸움이 늘 화제거리가 되는 것이 조국 교회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삶이 따라와주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오늘과 같은 시대에 우리도 환상을 보고 주님께로부터 오는 꿈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시대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원하는 말씀을 듣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위축되고 다치고 예수를 믿는 존영과 아름다움이 다 떨어지고 교회의 영광과 성도의 귀함에 대한 관점보다는 교회에 와서 또 다른 상처를 받지나 않을까, 믿었던 목회자와 중직자에게 또 실망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저 상처 받지 않으려고 교회 안으로 쑥 들어오려고 하지 않고, 할수만 있으면 그저 외면에, 먼 곳에 그냥 돌면서 말씀이나 듣고 그저 언저리에 앉아서 신앙 생활 하고 싶은 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이다.
순금으로 밖에 비교될 수 없는 이 귀한 교회에 대한 꿈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다 상실하고 그저 되는대로 나 한 목숨 근근히 지탱하며 사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너무나 소극적인 신앙생활을 한다. 피붙이보다 귀한, 구주의 너무나 값진 보혈로 사서, 우리를 연합된 공동체로 불러서 피붙이와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공동체의 영광과 복됨으로 나아오도록 부르는 이 귀한 시대에 교회를 향한 쓴뿌리와 미움과 좌절과 냉소가 이 조국교회 안에 있고 교회에 대한 환상과 꿈을 잃고 사는 것이 이 시대의 아픔과 질고라 할 수 있다. 교회의 설립을 기념하는 이 귀한 자리에 성도들은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봐야 한다. 그저 좋은 교회, 큰 문제 없는 교회에 안주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일곱개의 촛대로 온 세상을 밝히며, 이 땅의 수많은 아픈자들을 위로하며 돌아보며 사는지를 돌아보고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저 우리가 주일을 한 번 기념하고 지나가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이 순금 등대에 찬란한 소원,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왜 이런 그림을 스가랴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나? 너무나 성전을 짓고 교회를 세워가는 스가랴 시대의 성도들에게 너무나 좌절하고 절망하고 마음 아파하고 고통할 만한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림을 주시는 것이다. 그 환상을 붙들고 절대로 굴복하지 않고 그 꿈을 가지고 반드시 그와 같은 날이 올거라 믿고 현실 앞에 굴복하지 않도록 꿈과 환상을 주시는 것이다.
이들이 직면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가. 큰 산아 니가 무엇이냐 니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장애가 얼마나 큰 지, 큰 산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건축을 못 했다. 이방의 반대, 모욕과 모독, 조롱과 핍박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그 일을 다시 시작하려는 자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스룹바벨은 이 재건을 다시 시작하는 총독이다. 스룹 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아무리 큰 산이 우뚝 솟아 있어서 넘지 못하고 극복되지 못할 지라도 전부 평지가 되고 말것이라는 것이다.
주춧돌은 공사를 시작할 때, 머릿돌은 공사를 완공할 때 내놓는 것, 스룹바벨은 마침내 머릿돌을 맞추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서 이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구나 하고 감격해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교회가 그렇게 될 줄 믿고 살도록 스룹바벨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과 꿈을 주시는 것이다.
10절을 보라. 바깥에만 어려움이 있는것 아니다. 내부에서 이런 말들이 나온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짓고 있는 성전이 얼마나 초라한지 모른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과거에 대한 성전의 기억이 있다. 솔로몬이 광대한 시대에 지었던 성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규모와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치장된 이야기에 비하면 지금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온, 그것도 4만명 남짓이 돌아와서 짓는 성전은 너무나 초라했다. 성전을 지으면서도 스스로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보잘것없고 평범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영광을 담아낼 수 있을까 내면적으로 낙심하고 좌절하고 냉소하고 한탄과 패배에 빠질 수 있다.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는줄 알고 기뻐하리라. 여기서 또 다른 일곱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성령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여호와의 일곱개의 눈을 가지고 보지 않으시는 곳이 없이 온 세상을 다 감찰하시는 여호와의 눈, 여호와의 신 때문에 이 모든 장애와 어려움들을 넘어서서 마침내 성전이 완공되고 그 찬란한 황금 등대로 예비되는 교회의 영광이 회복되고 말것이라는 환상과 꿈을 주고 있다.
이 귀한 그림을 다 보고 나서 스가랴가 뭐라 말하는가. 4절 보라. 이 환상을 다 봤는데 스가랴가 묻는다. 내게 말하는 천사가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니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스가랴가 대답한다. 내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이다.
이 모든 그림이 성전에 대한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가랴가 모른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도대체 이것이 가능이라도 한 것입니까? 이렇게 초라한 성전을 짓고 있는 종살이 70년 인생의 우리에게 정말 가능하기라고 한 것입니까? 이 일이 정말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까? 라고 스가랴가 반문하는 것이다.
이에 천사가 6절에 대답한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능력되지 않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교회의 순금 등대에 비추고 있는 이 교회의 환상이 이렇게 초라한 성전을 짓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말 가능할까?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손가락질을 듣고 조국교회에 아픔이 많이 일어나는 이 시대에 순금 등대처럼, 생명의 말씀을 밝혀내고 밝혀진 말씀을 따라 온 땅을 밝히는 이 그림이 과연 가능할까? 라고 반문하는 스가랴에게, 이는 힘으로 되지 않고,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힘으로라는 말은 군대의 힘, 일꾼들의 힘, 집단의 힘을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힘이다. 능으로라는 말은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사람 개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말한다. 주님께서 스가랴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나. 너희들이 개인개인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함께 힘을 내고 마음을 맞추고 함께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귀한 성령으로, 우리가 지난 2주 동안 계속해서 봤다. 성도가 삶을 살아갈 때 제일 중요한 원리는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모여서 함께 연합하고 함께 노력하는 우리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다워 지고 온 세상을 비추어 내는 밝은 빛을 비추고 어둠과 상함과 질고와 아픔이 있는 이 땅에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주의 그 귀한 우리 구주의 대속의 그 귀한 결과로, 선물로, 자격없고 값없는 우리에게 선물로 값없이 주시는 그 귀한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 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시대의 성도들이 유리 방황하면서 목사를 찾아다닌다. 인간적으로 볼 때 실망을 시키지 않을 것 같은 목사를 찾아서 유리 방황한다. 조국 교회의 문제가 목회자들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그들을 꾸짖고 싶은 용기는 없지만, 사람 하나가 무슨 대안이 되겠습니까? 목사를 바꾸는 것이 무슨 대안이 되는가? 좋은 중직자들을 뽑아야 한다고 한다. 남서울교회 20명의 장로들 보면, 이분들하고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겠다 싶은 만큼 귀한 분들이다. 그러나 중직자 몇 사람이 교회를 교회되게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시대는 이 시대의 대표자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그런 소수의 변화에 의해서 올거라고 믿지 않는다. 나는 3대 담임 목사로서 남서울교회에 와서, 홍목사님처럼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분이 한 일 못한다. 이철 목사님 얼마나 귀한 분인지 아는가? 세상에 그렇게 귀한 분이 어디 있나? 나를 만나보면 알겠지만 별난 성격, 까탈스러운 사람이다. 나는 그 분처럼 목회할 자신 없다. 나는 교회 안에 헌신되어 있는 소수를 갖지고 교회를 이끌어갈 마음 손톱만큼도 없다. 권사님들과 안수집사님들 너무 훌륭하지만 이분들 모시고 일할 생각 전혀 없다.
교회를 구성하는 몸 전부를 움직이며 교회를 이끌어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몸 전부를 구성하는 성도 전부가 움직이는 교회를 해야 한다. 모임 언저리에서 주변에서 왔다갔다만 하실 분들은 교회를 잘못 선택했다. 몸 전체가 자신의 기능과 부름을 감당하지 않으면 교회가 교회다워지지 않는다. 사람 전부가, 각자가 하나님의 부름 앞에서 어떤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는지 깨닫고 그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마치, 모자이크처럼 그 교회 구성원 전부가 감당하면서 몸을 함께 일으켜내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교회의 이 영광스러운 교회의 일정한 부분은 어둡게 가리워져 있다. 내가 특출하지 못한 것 만큼이나 이 시대의 교회가 누구 특정한 사람으로 인해서 교회가 지속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성도가 자기에게 주어진 사람들이 충성스럽고 진실되게 하나님의 면전에 딱 서서 성령이 주시는 도움과 은혜를 붙들고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깨달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감당해 나가는 것을 볼 때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교회가 될 것이다. 그저 은혜만 받고, 말씀만 보면서 신앙 생활하겠다는 사람 없어야 한다. 내가 공동체에 부름받은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함께 일구어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향한 가장 중요한 부름이다. 나는 여러분을 억지로 하게 하는 일은 없을 거다. 교회가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여러분이 깨닫고 자발해서 들어오도록 또 기다리는 일을 끝까지 할 것이다. 허락되는대로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들어와서 함께 아끼고 함꼐 몸을 지어가는 그 일을 하도록 끝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 여러분이 져야 할 짐을 지지 않기 때문에 교회 한 쪽 귀퉁이가 계속 어두운 상태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교회는 세상 공동체와 다르다. 여러분 하나가 빠지면 교회가 하나 되는데 더 지체되는 것이다. 우리는 38년 동안 좋은 이름을 누려왔다. 귀한 두 분의 목회자를 모셔왔다. 이제는 특출한 한 두 사람이 필요한게 아니다. 이제는 모든 지체들이 교회를 자기의 영역에 서서 감당해 내고 함께 교회를 이루어가고 몸을 일구어 가는, 순금촛대처럼 섞은 것이 없는 그 아름다움과 가치로움과 보배로움을 드러내는 그것이 교회의 중요한 부름이다.
오늘 우리가 38주년을 기념하는데 앞으로 40주년이 되고 50주년이 되었을 때에는 정말 우리가 그 날의 우리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시대를 향한 이 조국 사회와 오늘을 향한 주님의 부름에 따라 신실하게 달려왔노라. 과거의 선배를 기억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 시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신실하게 감당해왔노라고 말할 수 있는, 성령으로 따라 행함으로 교회를 일구어 가는 교회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남서울 교회 안에 풍성하게 되어 이 조국 땅과 열방을 밝히는 복된 은혜가 우리를 통해 계속되어 바라고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