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오늘 본문은, 희락과 기쁨, 감사라고 말한다.

3절부터 빌립보서의 본문의 시작. 헬라어에는 하나의 동사만 들어있다. 감사하노라. 나는 감사하노라. 죽음의 지경에 처한 바울이 감옥에서 처음 한 말이 감사다. 감옥 속에서 감사와 기쁨이 뭔지 아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요소. 마음 속에 감사와 희락과 기쁨이 주중에 있었는가? 성도들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일방적인 기쁨이 아닌, 성도가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는 참된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를 3가지로 보여준다.

사도를 감옥 속에서 기쁘게 만든 기도제목

1. 빌립보 성도들로 인해 감사 - 동역
빌립보 성도들로 인한 기쁨, 왜냐하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빌립보 성도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
참여: 코이노니아, 동역, 교제 즉, 그의 사역에 동역하는 기쁨 때문에 기뻐하고 있음. 신앙의 기쁨은 동역 할 때 온다.
- 너희 무리를 위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은혜에 “참여”도 코이노니아. 하나님의 진리의 복음을 거짓된 교리로부터 변호하고 보호하는 것. 바르게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빌립보 성도들이 동참했다는 것이다. 나의 매임에 너희가 함께 참여함.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 에바브로디도 편에 헌금을 보냄.
- 우리는 다른 지체와 동역할 때만 성경적인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다. 이 사회는 어느 시대보다 부유하지만 기쁨과 감사가 있는가. 혼자 살아남으려고 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
- 동역은 성도가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큰 기쁨 중의 하나다. 아무리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처럼 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른 지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혼자서 절대로 완전할 수 없도록 사람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완전해 지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나의 약함을 다 보완해서 내가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로의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교회 안에서 누려져야 한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완전한 사람은 없다.
>> 나의 부족함을 자꾸만 물질이나 다른 것들로 채워서 완전해지려고 하지 않는가?,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고 하는 건 아닌가?
- 어느 한 사람 만큼은 용서할 수 없고 잘 해줄 수 없는 사람 있다. 다 마음이 통하고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과만 같이 가는 동역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그를 절대로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을 배제하면서 동역을 한다면 세상적인 모임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들을 품어내는 노력이 포함된 것이 동역이다.
- 우리는 모두 공사 중이다. 주님을 만나면서 얻은 급속한 변화 뒤에 성화의 과정이 뒤따른다.

2. 하나님께 감사
사람과 동역 하면서 실망할 때 냉소에 빠지지 않는 기쁨과 감사의 근원은 하나님. 사람들과 동역하는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끝까지 실패함이 없이 데려갈 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6절). 사람 때문에 냉소에 빠지지 않는다.
>> 사람들에게 실망할 것을 두려워 하지는 않는가?
하나님이 나를 실망시킨 사람을 끝까지 데려갈 줄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더 순전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재미있는 존재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신을 믿는다. 사람을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근원이다.

3. 바울이 그들을 먼저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의 작은 수고와 섬김이 크고 귀하게 온 것이다.
그들이 잘하고 예쁜 짓 해서 기뻐진 방식이 아니다. 그들을 향하여 먼저 가지고 있는 사랑이 우리의 삶에 거듭되는 기쁨과 감격을 만들어 낸다. 예수가 나를 먼저 사랑하신 것 처럼.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7절)”, “내가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8절)” 빌립보 성도를 향한 진실한 사랑을 바울이 품고 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남을 먼저 사랑할 수 있다.

나눔
아내와 이레를 사랑하자. 나도 결혼하고 나니 아내에 대한 생각이 점점 달라진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항상 곁에 있으니까 당연히 내 편은 맞는데! 그만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내에게 툭툭 하기가 십상이다. 가정에서 아내를 적극적으로 사랑해야겠다. 이레를 낳고 나서 손잡고 자는 일도 드문데 말이다. 이러면 안된다.

어제 밤 이레가 잠들기 전에 한참 찡찡 거리는 걸 보고도 얘는 이제 수면 교육을 시작해야지 라고 하면서 안아 주지 않았다. 계속 울고 있는 이레를 보면서, 나는 이 아이의 수면 교육을 위해 이 울음 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 건지, 아니면, 무거워서! 안아 주지 않는 건지 경계가 모호해지더라. 이레가 태어난지 50일이 지났으니 이제 수면 교육을 시작해야 하는 건 맞다. 그 말인즉슨 아이가 스스로 밤이라는 환경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하는 동시에 이 일은 이레 스스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레가 직접 경험하고 터득해야 할 것을 가로막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 이게 혹시 나의 편리함이나 혹은 이레 너도 앞으로 살아갈 환경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아야 돼! 라는 공격적인 마음이 들어있지나 않은지 항상 조심해야겠다. 아빠라고 해서 앞으로 딸이 하는 모든 행동이 마냥 좋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나는 이레를 더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이레를 대하는 겉으로의 방식은 같아 보여도 결국 나 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것 같다.

교회의 기초가 가정이다. 가정 안에서도 우리는 타인이자 서로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주님 안에서 동역을 경험하고 배워 나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