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뉴숲

2013. 6. 9. 06:19


따땃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여기는 불로뉴 숲. 파리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까. 정작 현실에서는 변한 것이 없고 무슨 큰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마음은 자꾸만 바벨론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아내의 말마따나 말씀을 부적처럼 의지하며 사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예전의 안락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나의 마음. 그러고 보니 지금껏 예전의 어느 한 때를 그리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아, 신혼 때가 그립다. 일할 곳과 친구들과 안락한 집이 있었던 그 때. 하지만 우리는 또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고 그 과정 중에 있다. 이 여정이 흔히 생각하는 안락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 내가 믿을 수 있는 만큼만 믿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 하지만 다음달 집세는 어떻게 내야할지 모르겠다.



여기까지 읽은 아내가 그 때의 삶이 바벨론은 아니었다고 토를 달았다. 그렇네. 나 참, 나의 넋두리에 토를 달다니. 으디 여자가 남자의 말씀에.



이제 우린 한 숨을 돌리고 어학원에서 만난 어느 누나와 함께 불로뉴 숲 안으로 들어가 볼 참이다.

불로뉴 숲은 파리에서 무지 큰 숲이다. 저녁에 불로뉴 숲을 가는 건 위험하다. 마약과 매춘이 일어나는 곳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낮이지만 그래도 기대된다.

근데 그 누나가 안 오고 있다.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 버린 듯 하다. 빠가야로. ㅋㅋ



누나를 만나 우린 지금 작은 호수를 바라보며 온갖 과자와 과일을 흡입했다. 순식간에 엄청난 양을 먹은 뒤 누나는 얼마 안 있어 잠에 곯어떨어졌고 아내는 옆에서 꼬부랑 글씨 책을 읽는다. 난 언제나 이런 나른하고 행복한 순간이면 멍때리길 좋아한다.

오전보다 사람들이 많아졌다. 개를 데리고 와서 노는 사람도 있고, 깨벗고 풀밭에 누워 햇볕을 쬐는 사람도 있다. 선진국이란게 뭘까? 업무 시간 외엔 업무를 하지 않는 것. ㅋㅋㅋ



뭐, 숲을 돌아다녀본 결과,

일단 무지 넓다.
숲 안 쪽으로 들어가면 낮에도 인적이 드물다.
호수가 있는 바깥 쪽은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커플 단위로 놀러와 양껏 놀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좋음! 끝!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