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1장 - 강해 23
2013. 10. 2. 13:58욥기 31장 - 강해 23
29장에서 31장에 걸친 욥의 독백이자 마무리.
29장. 욥이 젊었을 때의 형통함, 욥의 회상
지나간 세월로 되돌아갈 수만 있으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던 그 지나간 날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마치 군대를 거느린 왕처럼,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해 주는 사람처럼,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이 갈 길을 정해 주곤 하였건만. (욥기 29:2, 25 RNKSV)
30장. 욥이 비웃음을 받는 현실, 그것이 타당한가를 떠나서 일단 현실이 이렇다.
그런데 이제는 나보다 어린 것들까지 나를 조롱하는구나. 내 양 떼를 지키는 개들 축에도 끼지 못하는 쓸모가 없는 자들의 자식들까지 나를 조롱한다. (욥기 30:1 RNKSV)
31장. 하나님을 경외함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차마 그런 파렴치한 짓은 할 수 없었다. (욥기 31:23 RNKSV)
친구들의 말과 같이, 우리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하나님께 잘못한 것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욥의 반응은 새롭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풀어내고 있다. 신앙이란 것은 모든 인류가 가지는 종교성의 공통성은 신비주의에 있다. 내면 깊이 어떤 신과의 교감을 누구나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소리 질러 부르는 기도보다 조용히 드리는 기도에서 더 신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인격자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것보다 종교적인 어떤, 기대와 신비감을 느끼길 더 좋아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은 훨씬 활동적이고 역동적이시다. 변화와 확실성이 있는 가운데 역사적 과정으로 묘사한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이야기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관한 설명은 인간을 추상적으로 그리지 않고 역사를, 사실을 말한다.
우리의 신앙은 시간을 빼서 고민을 멈추고 신비와 종교성을 묶으려고 하는데 성경은 반대로 말한다. 일하시고 싸우시는 하나님이시다. 얍복 나루의 씨름을 보라.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 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창세기 32:24 RNKSV)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만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생 한 가운데에서 만나시는 분이다 순탄한 인생은 없다. 말씀하시고 보호하시고 신실하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였지만, 야곱 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창세기 32:26 RNKSV)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치열함.
너희가 나를 거역하여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나도 너희에게 너희가 지은 죄보다 일곱 배나 벌을 더 내리겠다. (레위기 26:21 RNKSV)
죄와 벌의 하나님만 기억하면서 우리는 울 줄 모르고 하나님을 두려워만 하는 신자들이 되어 있다. 기도가 뭐 였는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하실 때 찾아와 확인하신다. 아브라함에게 미리 이야기하신다. 멸망하지 아니할 의인의 수를 놓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타협하신다. 그게 기도다.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 우리는 타협하지 않는다.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부족함, 완악함, 부족, 실패를 우리의 신앙에서 제외 시키고 있다. 자기의 실존과 상관 없는 것들을 신앙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실패는 끝이 아니다. 욥기는 희망적인 이야기다. 하나님이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가를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