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읍 구정2리

2011. 8. 6. 14:15



어제 저녁, 친구들과 산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나의 고향 포항에서도 변두리 지역인 오천에서 한 3년 살았나..
초딩 2,3 학년 쯤이었는데 아마 어릴적 기억 중에 그 시절이 가장 찐한 기억인 것 같다.

포항 시내에 살다가 김사장님이(=아부지) 공장을 운영하면서 우리 가족은 모두 오천읍이라는 곳으로 갔다.
지금도 거긴 별거 없지만 그땐 더 황무지였다.

덕분에 나는 우리집(=공장) 뒤의 개울가에서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우리집 건너편에 갓 지은 제일맨션 마당에서 친구들과 야구도 하고,  
 그 뒤로 넘어가면 또 허허벌판인데 거기서 광주리에 실을 매달아 참새를 잡으려고 했으나
참새는 우리보다 똑똑해서 아무도 잡히지 않았다.

초딩학교 1학년 때 이미 전학을 한 번 했었기 때문에 또 이사간 오천으로 전학가기 싫어서
근 한 시간이나 걸리는 버스를 타고 오천에 있는 집과 포항 시내에 있는 초딩학교를 오갔다.
(그 이후에 다시 학교 근처에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얼마 안 있어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가서 결국엔 또 한 번 전학을 해야 했다.)

내 기억엔 아부지는 항상 바빴지만 공장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나중에는 큰 어려움을 겪었드랬다.

부모님은 항상 나의 어린 시절에 정서적인 보살핌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가지는 동시에
그래도 열심히 살아오셨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살게 되었지만 넌 왜 지금 이모양이냐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듯 하다.

사실 이렇게 집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여전히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줄로 아는 부모님이 8월이면 내가 휴가를 맞아 집에 오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인데,
이 상황 또한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 지 막막하고, 또한 사실 한달 전부터 자체 휴가인데
뭘 또 휴가 기분을 내면서까지 포항엘 가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이 근원에 근원을 타고 내려가
원인 모를 어린 시절의 장면까지 간 것 같다.




어젯밤 금요기도회 때는 야곱의 자기 중심적인 열심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자기 인생에 초를 치고 꼬일대로 꼬이는 모습과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야곱을 넉넉히 받아내시고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별 수 없다는  생각과 하나님이 그저 고마워서 눈물을 찔찔 짰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만 기억하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건 가슴으로 알겠는데
문제는, 또 포항에 가서 부모님을 대하면 표정이 굳는다.

그래도 뭐, 나와 부모님은 그렇고 그런 사이니깐.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