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예배

2010. 3. 28. 22:57
설교말씀을 듣다가 문득, 요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 떠올랐다.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복잡다단한 관계의 일이었다.

'아, 긴장을 놓으면 한번에 훅 가는구나..' 하는 생각.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즘 자꾸 스마트폰을 사고 싶은 욕망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그거 사면 정말 일정관리도 잘할 수 있는데,
지하철에서 성경도 더 많이 읽고 봐야할 영화도 보고 봐야할 신문기사도 읽을 수 있는데,
그 스마트폰을 집으면 내가 더 확장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기 욕심,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하려는 끊임없는 욕심, 물론, 그 기계가 주는 편리함도 부정하지 않겠다만 무조건 내 삶의 발전(?)을 보장해주리라(?) 맹신하며 탐욕스런 눈을 번뜩이며 달려드는 자세는 좀 아니란 생각을 가까스로 마침내 드디어 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나를 확장하려는 생각은 끊임없다. 고상하려면 악기 하나는 잘 해야 하지 않겠나, 얼마지? 살 수 있을까? 저건 얼마지?, 이참에 자전거도 좀 업그레이드? 별의별 생각이 나를 매우 바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참 시덥잖은 일상이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과 나의 삶은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Posted by 뚤뭇 :

기도제목 발표시간

2010. 3. 11. 23:56
기도제목을 발표하는 시간이,
스스로 말한 것을 스스로 들으며 자기 최면에 빠지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신도 믿지 못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 내어놓으면서 은근슬쩍 사실로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뚤뭇 :

 

 

 

GOD said, “1) It’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2) I’ll make him a 3) helper, a companion.” So GOD formed from the dirt of the ground all the animals of the field and all the birdds of the air. He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name them. Whatever the Man called each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The Man named the cattle, named the birds of the air, named the wild animals; but he didn’t find a suitable companion.

 

4) GOD put the Man into a deep sleep. As he slept 5) he removed one of his ribs and replaced it with flesh. GOD then used the rib that he had taken from the Man to make Woman and presented her to the Man.

 

The man said,

“Finally! Bone of my bone, flesh of my flesh! Name her Woman for she was mede from Man.”

 

6) Therefore a man leaves his father and mother and embraces his wife. They become one flesh. The two of them, the Man and his wife, were naked, but they felt no shame.

Genesis 2 - the Message

 

 

"Adam and Eve"

Adriaen van der Werff (1659-1722)

 

하나님이 이브를 만드는 장면을 통해 부부관계를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왜 만들었을까요? 그 이유는 아담 혼자서 잘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재미있는 점은, 그 사실을 정작 아담 자신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아담으로 하여금 갈급하게 하셨지요. 어떻게요?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으라고 명령하신 겁니다. 그러고 보니 동물들은 모두 자기네 짝이 있네요. 그 적절한 시기에 아담의 깊은 잠 즉, 배우자를 위한 희생을 통해 이브가 탄생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옆구리와 같은, 항상 함께 하는 존재랍니다. 남편은 돕는데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내의 도움을 잘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잘 아는 바와 같이 보통, 아내는 남편의 비서로 보이기 십상이지요. 그건 옳지 않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만나 함께 살도록 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인 동시에, 그만큼 자신이 상대방 앞에서 다듬어져야 한다는 현실적인 과제를 떠안게 됩니다. 그 과정 중에 때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다툼과 상처가 있을 수 있지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자신을 낮춰야 하는 것입니다. 성화입니다.

 

그렇다면 독신은 어떻게 하나요? 하나님은 때에 따라 독신의 은사를 주시기도 한답니다. 인간은 가정을 이루어 함께 살아가야 하지만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것에 못지 않은 커다란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어떤 창조원리에 따라 지어졌는지를 잊지 않고, 간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뿐더러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면 잘 드러나지 않는 자신만의 편견이나 아집 또한 내려놓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From "The Fireside Book of Favorite American Songs,"

Illustrated by Aurelius Battaglia. 1952.

 

 

남편과 아내가 서로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먼저,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있겠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각각 부모와 배우자를 동시에 한 몸으로 맞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또 배우자만을 섬겨야 하는 창조원리에 의해 지어진 존재입니다.

 

둘 사이에 태어나는 자식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식이 함께 있는 것은 잠시입니다. 얘네들은 곧 독립을 하는 존재이므로, 부모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자식을 잘 떠나 보내야 합니다. 이 맥락에서 볼 때에도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중요합니다. 한 평생을 함께 할 유일한 상대는 자식도 아니고 부모도 아닌 바로 배우자이기 때문입니다. 둘의 관계가 틀어졌다고 해서 부모나 자식에게 의존하는 것은 배우자를 놔두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겠지요.

 

“나는 유대교도다. 그렇다고 내가 종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나는 신자가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나는 유대교를 믿는다.”

 

얼마 전에 읽었던 미테랑 평전에 나온 일화입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죽음을 앞둔 유태인이 한 말이지요. 믿음은 이상적인 곳에 있지 않습니다. 현실은 부단히 우리에게 ‘너의 행동은 어떤 믿음에서 나온 것이냐’고 질문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저의 걸음은 ‘꾸역꾸역’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       *       *

 

 

1)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창조원리에 맞지 않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짝을 이루어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다.

 

2) 하나님은 아담에게 짝꿍이 필요함을 아신 뒤에 한 일은 놀랍게도, 들짐승과 날짐승들을 만들어 아담에게 이름을 짓도록 하신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동물의 생태를 유심히 본 뒤에야 비로소 자신에게도 짝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를 먼저 아시지만 인간이 배고프기 전에 배부름을 주시지는 않는다. 나의 궁핍함, 그리고 채움에 대한 열망은 이미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좋은 것들을 두고 먼저 필요를 느끼도록 하시는 것이다.

 

3) helper란 단어는 원어상으로 볼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고 할 때의 개념이다

 

4) 이브의 탄생에는 아담의 깊은 잠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죽음이란 개념이 없었으므로 잠은 자기 희생과 자아의 죽어짐을 뜻한다.

 

5) 갈빗대로 쓰인 이 단어의 원어를 살펴보면,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대부분 ‘옆구리’로 쓰였다. 여기에서 나오는 갈빗대 역시 옆구리로 해석한다면 뼈 뿐만 아니라 살도 이미 포함되는 것이다. 자신의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이브는 하나님이 만드신 다른 피조물과는 독특한 차이점이 있다. 아담에게는 자신의 몸과도 같은 이브. 특히, 아담의 머리나 다리가 아니라, 옆구리를 가지고 이브를 만드셨다는 것은, 언제나 곁에 있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6) 남편이 아내와 합하려면 먼저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의존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와 자신을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 금요기도회 때 들었던 말씀입니다.

Posted by 뚤뭇 :

 

그 후에 예수께서 성령께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시험을 받으셨다. 그곳에는 마귀가 대기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밤낮으로 사십일 동안 금식하며 시험에 대비하셨다. 그러다 보니 허기가 극에 달했고, 마귀는 첫 번째 시험에 그 점을 이용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 돌들한테 말해서 빵 덩이가 되게 해보아라.”

예수께서 신명기를 인용해 답하셨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시험으로, 마귀는 예수를 거룩한 도성으로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앉혀 놓고 말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뛰어 내려 보아라.”

마귀는 시편 91편을 인용해 예수를 몰아세웠다.

“그분께서 천사들을 시켜 너를 보호하게 하셨다. 천사들이 너를 받아서 발가락 하나 돌에 채이지 않게 할 것이다.”

예수께서 신명기의 다른 구절을 인용해 응수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세 번째 시험으로, 마귀는 예수를 거대한 산 정상으로 데려갔다. 마귀는 선심이라도 쓰듯, 지상의 모든 나라와 대단한 영광을 두루 가리켜 보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전부 네 것이다. 무릎 꿇고 내게 경배하기만 하면 다 네 것이다.”

예수께서 딱 잘라 거절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그리고 세 번째로 신명기를 인용해 쐐기를 박으셨다.

“주 너의 하나님, 오직 그분만을 경배하여라. 일편단심으로 그분을 섬겨라.”

 

시험은 끝나고 마귀는 떠났다. 대신에 천사들이 와서 예수의 시중을 들었다.

 

 

*  *  *

 

 

   삶의 내리막은 마귀가 만든 것만은 아니다.

   가난한 것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객관적’이라고 해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성경을 인용한 주장의 신뢰도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50%이다.

   마귀는 우리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곤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  *  *

 

 

요즘의 내 삶이 좀 그렇다는 판단하에 얼른 일을 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자문자답은 나를 ‘근면(?)’하게 만든다. 새벽기도를 할 때 잠이 오는 이유도 일을 할 수 있는 낮에 졸지 않으려는 합리적인 판단에서 비롯됐으리라. 그러나 오늘 아침의 이 말씀은 내 생각의 근원을 고발한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해결해달라고 기도 할 때면 늘 이런 마음 속에 떠오르던 생각,

“그래서 너는 나와 지금 친하니?, 말이 좀 통하는 것 같니?”

나는 종종 하나님과 포인트가 어긋나는 경험을 한다.

 

결론, 새벽기도 때 졸지말자.

Posted by 뚤뭇 :

 

  I gave up all that inferior stuff so I could know christ personally, experience his resurrection power, be a partner in his suffering, and go all the way with him to death itself. If there was any way to get in on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I wanted to do it.

 

    I'm not saying that I have this all together, that I have it made. But I am well on my way, reaching out for Christ, who has so wondrously reached out for me. Friends, don't get me wrong: By no means do I count myself an expert in all of this, but I've got my eye on the goal, where God is beckoning us onward - to Jesus. I'm off and running, and I'm not turning back.


    So let's keep focused on that goal, those of us who want everything God has for us who want everything God has for us. If any of you have something else in mind, something less than total commitment, God will clear your blurred vision - you'll see it yet! Now that we're on the right track, let's stay on it.

 


    그리스도를 직접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죽기까지 그분과 함께하기 위해, 나는 그 모든 하찮은 것을 버렸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는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얻었다거나 다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놀랍게도 나를 붙드신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내 길을 갈 뿐입니다. 친구 여러분, 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결코 나 자신을 이 모든 일의 전문가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손짓하며 부르시는 그 목표, 곧 예수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나는 달려갈 뿐, 되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것을 모두 얻으려는 사람들은, 그 목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적인 헌신에 못 미치는 것을 마음에 품더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흐려진 시야를 깨끗하게 하심으로, 결국 여러분은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올바른 방향에 들어섰으니, 그 방향을 유지해야겠습니다.

빌 3:10~16

 

 

          *          *          *

 

나는 좀 꼴통스러운 데가 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좀처럼 그를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나님을 믿기보다 합리성을 믿고, 특별한 체험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땡깡을 부리기가 다반사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나에게 구직난으로 인해 적금을 못 넣게 하시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곳은 내 집이 아니라 누나 집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시며, 점심 때는 2000원 하는 김밥 두 줄 대신 4000원 하는 돈까스를 먹는 것에도 믿음이 아니면 주문하지 못할 것을 알게 하시며 내 삶을 오물조물 쥐락펴락 하신다.

 

이 모든 일의 아마추어라 말하는 바울의 고백은 나에게 절망 1%, 희망 99%를 준다.

We’re on the right track, let’s stay on it !~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