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8장 - 강해 28
2013. 11. 4. 04:04욥기 38장 - 강해 28
창조 세계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고 계신 하나님. 나중에 더 들어가면 다음 번쯤 나오겠지만 무소부재하시다. 안 계신 곳이 없으시다. 욥이 친 아우성이 뭐냐면, 하나님 만나주십시오. 내 현실에 부재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이 어디에나 있다고 말씀하심으로 시작하신다.
폭풍 속에서 맹렬하게 있었다고 하신다.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시작이다. 이 부분은 맹렬하게 나와야 한다. 8절에 보면, 땅, 바다, 하늘, 저승까지 망라하는데,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나올 때 문으로 그것을 가둔자가 누구냐, 막은 자가 누구냐. 가둔 자, 막았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등장하는 단어다. 욥을 보았느냐고 도전을 던지자, 하나님이 산으로 그를 두른 탓이라고 사탄이 말한다. 그를 하나님이 막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터뜨렸을 때 막은 자가 누구냐, 문 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는 넘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해변에 가면 제일 반복적으로 자주 보는게, 으르렁거리는 파도 아닌가? 으르렁 거리며 왔다 물러가는데, 넘어오지는 못하는 거다. 밤낮 으르렁 거리며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걸 하나님이 막았다고 하는데 그걸, 넘쳐나는 어떤 난폭함, 무질서를 막고 있다는 것을 넘어서, 막았다 넘어오지 못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뒤집으라.
바다는 넘실대고 쳐들어올 것 같기도 하지만, 한 군데 모여서 뭔가 감싸안고 있다고 한다. 돌고래, 연어, 복, 돔을 감싸안고 있다. 여기와서 이미 첫 장에서부터 뭐가 드러나냐면, 네가 없다고 아우성 쳤던 그 때 내가 있었다고 하신다.
12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네가 아침에게 명령하여, 동이 트게 해 본 일이 있느냐? 새벽에게 명령하여, 새벽이 제자리를 지키게 한 일이 있느냐?
13또 새벽에게 명령하여, 땅을 옷깃 휘어잡듯이 거머쥐고 마구 흔들어서 악한 자들을 털어 내게 한 일이 있느냐?
밤을 지나야 비로소 오는 것이 새벽이다. 어둠고 캄캄한, 차단된, 혹은 버려진 시간을 밤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다는 거다. 바다를 막은 것이 아니라 바다를 싸안았다는 식으로, 낮에만 아니라 밤에도 하나님의 보호가 있다.
낮은 다 보는 것 뿐이지만, 밤은 각각의 상상력과 시성에 의해서 밤은 다르게 보인다. 밤에 숲을 본 적이 있는가. 낮에 보면 누구나 보는 숲인데, 밤에 보면, 영력에 따라 다르다. 밤은 별이 뜨는 시간이다. 해도 나오고 별도 나오고 그런건 안된다. 그 얘길 하는 중이다.
19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느냐? 어둠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대등하게 자리를 허락받고 있다. 낮만 아니라 밤이, 형통만 아니라 고난이 자랑만이 아니라 억울함이 그렇다는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매우 놀랍다. 낮과 밤, 하나는 옳고 하나는 그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아노의 건반과 같을 거다. 하나님의 창조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성실하심을 벗어난 것이 있을 수가 있느냐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다. 우리 눈에는 이분법으로 보인다. 옳고 그른 것, 성공과 실패, 자랑과 수모, 이런 이분법 밖에 없는데 우린 이미 앞에서 했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했는데, 이삭은 생명이요 죽음인데 연결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는 순간 사망이 생명으로 바뀌었다.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는 최고의 절망과 실패가 승리로 가는 연결점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늘 옳을 수 없고 늘 쌓아서 하늘에 닿는 건, 바벨탑만 그런거다. 우리는 늘 하늘에 닿을 수 없이 우리의 연약함 변덕 배신 같은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마치 흙으로 인간을 빚으시고 숨을 내쉬어 생명이 되게 한 것 같이 부활과 영광의 승리를 주신다. 너희의 전제와 경험 속에 나타나는 어떤 일도 나의 성실과 능력과 선한 것을 방해할 수 없다. 이렇게 선포하시는 장면이다.
그래도 여러분 마음에 별로 안 드실 거다. 고통스러우니깐. 이것을 야곱의 생애를 보면, 야곱에게 얍복나루터의 씨름과 함께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바꾸신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이다. 대등한 관계, 38장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등장하여 맨 처음 한 말씀, 너는 대장부 같이 허리를 동이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라. 너는 다만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대장부 같이 너는 대장부다. 라고 부르는 것 같이, 저는 야곱입니다라는 말에 대해 아니다, 너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말처럼, 승패의 개념이 아니라 그 어떤 한 사람을 칭찬할 때 최고의 칭찬이 뭐냐면, 아들은 아버지보다 낫네요. 라는 말에는 모든 부모가 만족한다. 자기보다 잘난 자식을 둔 부모보다 영광이 없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그 영광을 말하는 거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나를 이긴 자식이라고. 맨 끝에 가면, 마지막 축복이 다 뭔가? 가족적인 거다. 자식낳고 복을 받고 얼마나 예쁘고. 그게 뭐야? 라고 하지만 그게 뭔지 여러분은 살아봐서 알잖은가? 자식의 축복은 최고의 영광이다. 목사의 영광은 교회 성도들이 칭찬을 받는 거다.
하나님의 유머 센스, 그걸 모르면 성경을 못 읽는다. 그 속에 웃음이 있다. 속 깊숙히 웃으시는 하나님을 읽어야 한다.
호세아서 12장 1절~
1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고 살며, 종일 열풍을 따라서 달리고, 거짓말만 하고 폭력만을 일삼는다. 앗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이집트에는 기름을 조공으로 바친다.
2주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시고, 야곱을 그의 행실에 따라 처벌하실 것이다. 그가 한 일들을 따라 그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이다.
3 야곱이 모태에 있을 때에는 형과 싸웠으며, 다 큰 다음에는 하나님과 대결하여 싸웠다.
4 야곱은 천사와 싸워서 이기자, 울면서 은총을 간구하였다. 하나님은 베델에서 그를 만나시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5주님은 만군의 하나님이다. ‘주님’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분의 이름이다.
6그러니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
얍복 나루가 먼저 나오고 베델 사건이 뒤에 나온다. 형을 만나야 하는데 형은 아직도 보복을 준비하고 있고 도망갈 데는 없고 마지막 밤을 얍복 나루터에서 씨름을 한다. 베델은 그 형 속여서 장자의 명분 빼앗고 도망할 수 밖에 없어서 외삼촌 집에 가던 길에 밤에 돌베개 베고 자던 길에 만나는 장면이다.
창세기 28장
10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11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12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13주님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14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얍복 나루에서 참고 참다 나타나신 것 아니고, 욥이 부르짖었던 그 거부 중에도 하나님은 폭풍 같이 일하고 있던 나날들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하나님이 담판을 지으러 내려오신 것이 아니다. 베델에서 이미 약속하셨다.
야곱이 자기 혼자 사는 줄 생각하고 외롭고 어렵게 혼자 목숨을 연명하고 자기 재산을 만들어야 하는 모든 나날들이 사실은, 야곱의 선택과 결정과 무슨 욕심에 함께 하나님이 얍복 나루터에서 씨름을 한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맹렬히 간섭하고 있던 오늘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믿겨지지 않는다.
정호승의 시, 우박
하늘에 무슨 슬픈 일이 저리 있어서
또 누구의 서러운 죽음 있어서
저리도 눈물마저 단단해져서
배추밭에 우박으로 쏟아지는가
나는 퍽퍽 구멍 뚫리는 배추잎이 되어
쏟아지는 우박마다 껴안고 나뒹군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의 눈물 같아서
온몸이 아프도록
온몸에 숭숭 구멍이 뚫리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지 않은 때가 없다.
시편 105편
16그 뒤에 주님께서 그 땅에 기근을 불러들이시고, 온갖 먹거리를 끊어 버리셨다.
17그런데 주님은 그들보다 앞서 한 사람을 보내셨으니, 그는 종으로 팔린 요셉이다.
18사람들은 그 발에 차꼬를 채우고, 그 목에는 쇠칼을 씌웠다.
19마침내 그의 예언은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은 그의 진실을 증명해 주었다.
요셉의 생애는 전혀 요셉의 뜻과 무관하게 진행된다. 하나님이 주어이다. 그가 기근을 부르고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시며 그가 요셉을 감옥에 보내고 그의 손 발을 족쇄에 묶어 그 몸을 쇠사슬에 묶는다. 왜? 그의 말씀이 응하도록.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한다.
욥의 모든 억울한 비명 속에 하나님은 폭풍처럼 등장하신다. 하나님은 인과 법칙에 따라서만 일하신다? 그렇지 않다고, 엘리후가 닫는 세상을 날려버리고 있다. 인과 라는 법칙이 무효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보다 크시다.
질서가 필요하다. 법이 필요하다. 그것보다 크시다. 여러분의 모든 삶과 현실과 희망과 잣대와 그리고 어떤 근거를 이 하나님 위에 세워야 한다. 이 하나님,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용서하시고 전능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세우라. 그러면 여러분이 겪는 어떤 경우도 여러분을 서운하게 할 것은 없다. 내가 네게 이룬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의 약속을 믿는 믿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