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8장 - 강해22

2013. 10. 2. 06:00

욥기 28장 - 강해22

27장. 욥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근거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함
28장. 하나님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 것을 기뻐하는 동시에 그것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지혜라는 말로 다룬다.
지혜는 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파서 얻어지지 않더라. 그것을 값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값을 치루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23절에 가서,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나니. 하나님 만이 갖고 계신다. 그 지혜를 세상에서 펼치시고 행하신다. 세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 그 분이 만들어 쓰고 있는 하나님. 일을 하고 계셔서 지금 당하고 있는 현실도, 능력과 지혜, 선하심과 기뻐하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지금 일하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지혜고 악을 떠남이 명철이다.

사람이 이해관계를 떠나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신실한 욥에게 시험을 허락하셨다. 그가 당하는 모든 고통 속에서 그가 억울하다는 호소와 비명을 질렀다. 친구들이 와서 욥을 정죄한다. 욥의 대답은, 그렇지는 않다 였다. 벌 일수는 없다. 이것이 욥기를 시작하는 하나의 설정이었다.

결론도 안다. 욥이 답이었고 친구들이 틀렸다. 욥은 답은 모르지만 이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을 벗어났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고백을 한다. 그래서 28절. 똑같은 28절을 놓고 세 친구와 욥이 다르게 사용한다. 욥은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잘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라고 한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말을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조건으로 사용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지혜나 신앙은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한 조건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떠나는 것이 명철이라는 결론으로 왔다. 그것을 믿는다면 어떤 것이라도 감수하라는 것으로 간다. 이 말은 절대 만만치 않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는 말을 잘 소화하자. 이걸 내세우면 자동적으로 결과가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이 말을 잘 따라가 보자.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요한 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한 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마태복음서 11:17-19 RNKSV)

말도 안 듣고 책임도 지지 않는 사람에 대한 비유다. 유대인의 속담. 공감하고 동참하지 않더라, 친구들이. 세례 요한에게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더니, 나에게는 흉만 보고 당췌 나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통치에 맡기고 인정해야 하는데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믿음이라는 말로 본인의 삶 속에서 행하지 않고 안심과 만족을 얻으려고 하던가, 아니면 이렇게 못하겠다고 불신만 했지, 실제로 동참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와 내 인생과 내가 사는 우주와 역사가 하나님 손에 있으므로 맡기며 살아간다는 고백을 드디어 욥이 하는 것이다.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로마서 8:31, 32 RNKSV)

누가에 다른 것을 넣어보라. 정치, 시대, 국방, 교육, 현실.. 이것은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이의 약속이다. 조건에 불과하고 공허한 약속이 아니다. 아들을 보낸 구체적인 약속이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신앙이라는 것, 예수를 믿는다는 것,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사실은 늘 왜곡된다. 최고의 진심을 바치면 되는 것이지 진심이 실천되는, 자신의 인생과 운명을 내어주어, 순종하고 인내하는 것. 실제로 시간을 바치는 것. 어떤 각오, 선택,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시간을 바치는 것.

아담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 했을 때 사단의 유혹을 받아 먹는다. 그러자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을 먹겠다 안 먹겠다가 아니라 먹었다. 하나님의 금령을 어김으로써 하나님을 덮개로 하는 보호막을 벗어버렸다. 홀로 내팽개쳐 진 것 같이 홀로 노출된 것 같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30 RNKSV)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내주신 예수로 말미암은 약속이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삶의 고통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답 없음을 향한 인생길로 걸어가려 하지 않는다. 시공간 안에서 실체화하고 구체화된 예수를 기반으로 한 신앙. 우리가 한 수고와 기도, 소원에 대한 모든 결과가 하나님께 있는가. 아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는 답이 없는 길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구약보다 더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 예수.

예수 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의 경외심을 보시어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에게서 멜기세덱 의 계통을 따라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히브리서 5:7-10 RNKSV)

경배받아 마땅한 하나님을 실제로 구체화했다. 하나님을 보고 들을 수 있게 실체화 했다. 변명할 수 없고 속일 수 없고 외면할 수 없게 확인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우리의 버전으로 설명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구원이 되신 이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쥐고 계신 주님이심을 공감 안에서 본다. 그 아들 구원자를 죽이는 극악무도한 현실에서 건져내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이다.

예수를 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신앙을 가지라. 자꾸만 흠 없고 점없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배신하라. 하나님을 신뢰하라. 우리의 변명과 기만과 말할 수 없는 패역함을 보라. 자신의 결벽에서 벗어나고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라. 그것을 예수 안에서 확인하지 못하면, 그의 죽음이 부활로 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생활 할 수 없다. 매일 그냥 와서 씻고 돌아가고 씻고 돌아가고의 반복일 뿐이지,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고 걸어가는 인생을 걸어갈 수 없다. 어느 인생이 쉬운 게 있으며 세상 속에 믿을 수 있는게 뭐가 있나. 아무리 보완하고 준비해도 세상에서는 인간을 복되게 하는 것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이가...

이곳으로 오지 않으면 신앙 생활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예수를 믿는 무시무시함을 기억하라. 짧은 인생, 별 것 아닌 인생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 놀랍고 위대하고 감사한 운명이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결국의 자리로 인도하고, 담대하고 진심을 행사하는 기가 막힌 인생이 되기를.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