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봄 방학이 있다. 어학당을 다니는 나에게까지 2주간의 바캉스!
아싸라비용~

겸사 겸사 오르세 미술관에 갔는데 깜짝 놀랐다. 정말 깜짝 놀랐다.
중딩 고딩 때 책으로만 보던 명화를 실제로 보는데 그림이 막 살아있다.
가만히 쳐다보면 미소짓던 인물이 움직이고, 배경이 막 움직인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ㅋ
어쨋든 난 실제 그림을 보면서 충격을 좀 받았드랬다.

책이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왜 이렇게 얼굴 표정이 살아있을까?
옷의 질감이나 느낌도 완전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실화만 그런게 아니라, 고흐의 별 헤는 밤 같은 인상화를 봐도 그렇다.
고흐는 가난했지만 물감을 아끼지 않고 사용해서 그런지 별밤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물감을 많이 써서 그림이 두껍군. ㅋㅋ
아무튼 고흐의 그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충격을 받으면서 떠오른 게 뭐냐면, 그동안 내가 좀 오프라인 세계를 등안시 했다는 거다.

고딩 때였나.. 대구의 어느 대형 서점을 가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서점 안에 갖가지 책이 카테고리별로 쫘악 정리되어 있는 걸 보는데 막 지적인 욕구가 솟으면서 왠지 막 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던 그런 흥분 말이다. 물론 이것과 실제로 책을 읽는 행위 사이에는 무수한 거리가 있지만서도. ㅋ

그 이후로도 나는 대도시를 가면 꼭 대형서점에 놀러갔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 부터 서점 가는 것이 그닥 흥분되는 일은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나에게 지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곳은 어느샌가 아이튠즈 스토어나 이북 스토어가 됐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의 세계를 온라인으로 대체하는데 나에겐 별로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오르세 미술관엘 가서 명화를 보고 디용~ 한 거다.
그림을 실제로 보는 감동이 이토록 컸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스케일에 있는 것 같다. 종이책의 인쇄 품질이 아무리 좋아져도, 설령 입체적으로 인쇄를 할 수 있다하더라도 명화처럼 크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디스플레이로 구현되는 이북 또한 다를바 없다.

갑자기 프랑스 얘네들이 무서워진다. 건물 안에만 들어가도 핸드폰이 잘 안 터지고, 아직도 광케이블보다 ADSL 인터넷을 더 많이 쓰는 '구닥다리' 프랑스인들이건만 맛있는 진국은 이네들이 다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책은 온라인으로 대체 가능하고, 세대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대체될 거라 주장하지만, 명화는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가 없네. 답이 없다. 여전히 전세계 사람들은 그 나라의 문화 유산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고 있다.

다음으로 든 생각이 구글 글래스.
내가 구글 글래스를 끼고 오르세 미술관을 갔다면 그림을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당장 앱으로 구현된 기술은 아니다. 하지만 구글 글래스 앱이 지향하는 바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가 보였다. 바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다.

우리는 온라인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책상이 있어야 하고 콘센트가 있어야 하고 컴퓨터 본체와 키보드 모니터가 있어야 했다. 아니, 최근에는 아이폰이 그 많은 것을 다 없애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어떤 그림이나 제품을 검색할라치면 타이핑, 검색, 결과물이 맞는지의 대조 등을 해야하며, 더욱이 사람들이 잘 안쓰는 물건은 인터넷에 정보가 있는지도 의심스럽게 된다.

하지만 구글 글래스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그대로 디지털화해서 데이터로 저장한다.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는 대상일수록 중요한 물건이 된다. 즉 검색 우선순위가 높아지고, 이에 대한 관련 자료가 하나로 꿰어지기 시작한다. 미술관 안에 들어가 글래스를 착용하면 그 그림에 대한 관련 정보가 현실 속의 투명 레이어로 뜨기 시작하면서 그림에 대한 권위 있는 텍스트 정보를 읽어주기 시작한다. 아마 지금으로썬 위키피디아겠지. 물론 한국어 자료는 볼품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그래서 컴퓨터가 자동으로 번역한 원문을 읽어준다. 사람들에게 많이 읽어주는 자료일수록 원문 번역 정확도에 대한 수요가 올락가겠지. 그럼 그 원문을 문장 단위로 쪼개서 인터넷에 뿌리겠지. 몇몇 사람들이 번역을 다듬겠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ㅋㅋ (이건, chapcha라는 시스템을 발명한 사람이 ted에 나온 강연을 보면 알 수 있다.)

온라인의 세계도 몇 십년 사이에 엄청 커졌지만, 온라인은 온라인만의 세계라기보다 오프라인과 맞닿아 있는 온라인의 영역에 흥미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깨달은 것은 아카이브의 중요성!
이건 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정보의 옥석을 가리기 전에 정보를 잘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역사가 서양 중심이니 뭐니 해도 우리에겐 축적되고 정리된 자료가 절대적으로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있다면 나 같은 일반인들이 보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재가공, 혹은 용이한 접근성을 허락하지 않거나!

뭐 지금까지의 역사가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상대적인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현재. 지금 순간을 잘 정리하고 아카이브하는 것이 현 세대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필.수.교.양. 아니겠습니? ㅋㅋㅋ

작년에 울 교회에 교회사 특강을 하러 오신 이만열 교수님도 말씀하셨드랬다.
아카이브 너무 너무 중요해요.

네 맞아요 맞아.

아효 글 하나에 여러 가지 내용이 너무나 많지만 이렇게라도 아카이브한게 어딥니?
후손들아 부디 나의 훌륭한 글을 애써 이해해서 밝은 지혜에 이르도록 힘쓰거라.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