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에 일반 모니터를 연결하면 바탕화면이 대따 커진다.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이를테면 옆의 큰 모니터에는 무한 도전을 틀어놓고 노트북 화면으로는 지마켓에서 신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와따봉, 이래서 외장 모니터를 써 본 사람은 계속 쓴다.

근데 말이다.
그러다 시험 때가 되면 놋북과 책을 잔뜩 들고 도서관으로 간다.
놋북으로 리포트다 뭐다 작업을 할라치면 갑자기 몰랐던 답답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잘 쓰던 외장 모니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래서 집에 가면 결국, 시험 기간에 무한 도전 틀어놓고 지마켓질을 하게 되는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ㅋㅋㅋ

우리는 뭔가를 더 가지고, 성취하고, 자신의 기준이든, 타인의 기준이든, 어떻게든 행복해지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바라보아야 할 것은 행복의 기준에 역행할 때의 불행함이다.
행복해질수록 불행해질 확률이 커진다.
행복해지는 것이 어려운 것 만큼이나 불행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행복을 좇다보면 불행에 좇기게 된다.

결론은, 행복을 위해 걸어가되 땀흘리며 달려갈 필요없고,
역행하여 불행해지더라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될 것 같다.

난 근래에 결혼을 하면서 고시원에서 동굴스러운 집으로 이사를 하여 계급이 상승했다.
하지만 유학, 혹은 이민, 혹은 해외 이사를 앞두고 이 특권을 내려놓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궁극적으로는 불행이 아니지만, 당장의 행복은 아니며, 다만 체감적으로 따라오는 불편을 느끼고 있다.
가난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아니, 가난해지는 것은 불편하다.
편했던 것이 불편하게되고, 안심되던 것이 불안해지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유학 혹은 이민 혹은 해외이사를 앞두고 주위에서 부러워한다.
자기도 가고 싶댄다.
나도 그렇다.
나도 그런 어떤 일상에서의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충동이 유학 혹은 이민 혹은 해외이사일 때가 있었다.
20대에 생각했던 이것이 서른에서야 현실이 될 참이 되고보니 몰랐던 것들이 느껴진다.
지금 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귀중함 등등이다.

뭐,아직은 이 순간이 희망이나 긍정적인 싸인을 표할 순없지만,
난 나름 새로운 삶을 몸과 마음, 영으로 그렇게 하나씩 준비하고 있다.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