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담대함
2012. 2. 1. 21:57이 글은 지하철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성도와 다름없는, 혹은 그보다는 소극적인 복음의 외침이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디 태생이 죄인인지라 죄가 너무나 익숙하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심히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 이것은 죄를 선호하는 동시에 의로우신 하나님을 멀리하려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는 우리 안에서 좋은 것들을 찾으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낫게 자신을 여기려 하고, 나 자신을 그러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복음 안에는 죄용서함이 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칭한다. 죄용서만으로는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죄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우리는 돌아서면 죄를 짓는, 죄에 아주 능숙한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용서만으로는 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기를 원하신다. 구약의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해준다. 지키기만 하면.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만 부각될 뿐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몸소 그 율법을 다 지키신 후, 우리에게도 그 의를 거저 주셨다.
이를 듣고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의를 경험할 수 있다. 세상이 우리의 존재를 확신시켜주는 듯한 물질적인 복이나 단순한 마음의 안정에 비할 바 못된다.
우리의 간구는 그저 무죄하고 순결해져서 나의 더러움을 씻는데 있지않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담대한 의를 얻기 위한 끊임없는 회개와 자기부인, 예수를 통한 믿음의 확신에 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디 태생이 죄인인지라 죄가 너무나 익숙하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심히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 이것은 죄를 선호하는 동시에 의로우신 하나님을 멀리하려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는 우리 안에서 좋은 것들을 찾으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낫게 자신을 여기려 하고, 나 자신을 그러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복음 안에는 죄용서함이 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칭한다. 죄용서만으로는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죄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우리는 돌아서면 죄를 짓는, 죄에 아주 능숙한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용서만으로는 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기를 원하신다. 구약의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해준다. 지키기만 하면.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만 부각될 뿐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몸소 그 율법을 다 지키신 후, 우리에게도 그 의를 거저 주셨다.
이를 듣고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의를 경험할 수 있다. 세상이 우리의 존재를 확신시켜주는 듯한 물질적인 복이나 단순한 마음의 안정에 비할 바 못된다.
우리의 간구는 그저 무죄하고 순결해져서 나의 더러움을 씻는데 있지않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담대한 의를 얻기 위한 끊임없는 회개와 자기부인, 예수를 통한 믿음의 확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