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맥체인 관전 포인트
2011. 9. 9. 11:20
여호와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아주 못된 백성 가운데 살고 있다. 그들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도 보지 않으며 듣는 귀를 가지고도 듣지 않으니 이것은 그들이 거역하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아, 이제 너는 짐을 꾸려 대낮에 그들이 보는 데서 네가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거라. 그들이 비록 거역하는 백성이라도 네가 떠나는 것을 보면 아마 깨달을 것이다. 낮에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피난민처럼 네 짐을 밖으로 내고 저녁때에는 그들이 보는 데서 네가 포로 되어 가는 것처럼 떠나라. 너는 그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서 네 집의 벽을 뚫고 그리로 짐을 내어 그들이 보는 데서 네 짐을 어깨에 메고 어두움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때 너는 땅을 보지 않도록 얼굴을 가려라. 네가 행하는 이 모든 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의 징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령을 받은 대로 낮에 피난민처럼 짐을 꾸려 저녁때에 내 손으로 우리 집 벽을 뚫고 짐을 밖으로 내어 그들이 보는 데서 어깨에 메고 떠났다.
- 에스겔 12장 중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고 격려하며 위로합니다. 방언하는 사람은 자기 덕을 세우지만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의 덕을 세웁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방언하기를 바라지만 예언하기를 더욱 바랍니다. 방언을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않으면 방언하는 사람보다는 예언하는 사람이 더 낫습니다.
- 고린도전서 14장 중
맥체인의 재미는 신약과 구약을 하루 아침에 넘나들면서도 하나님의 일관된 시각을 발견하는데 있다.
1. 에스겔의 관전 포인트 - 삽질
하나님의 꼬봉 에스겔이 지령을 받고 삽질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재미 점수 기본으로 먹고 들어감
2. 고린도전서의 관전 포인트 - 방언 vs 예언
일단 '쟤는 방언한다' 하면 자타가 공인하는 신앙 점수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게 있는게 사실. 따라서 자기 믿음 쉽게 의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자기 믿음의 증표(하나님 믿음의 증표 아님)로 하나님한테 요구하는것 중에 하나가 방언의 은사.
따라서 공동체에서 쉽게 방언의 은사를 와따로 쳐주는 분위기가 있기 마련인데, 고린도전서에 의하면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관점에서 보면 방언보다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가 더 비싼 것이고, 그것보다는 예언하는 은사가 제일 비싸고 좋은 것임.
즉, 교회를 세워나간다는 기준에서 보면 예언하는 능력이 와따에용!
3. 에스겔과 고린도전서를 관통하는 관전 포인트
- 예언은 공동체를 세운다.
에스겔이 받은 지령, 즉 예언은 무조건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하고 있다. 에스겔에게 떨어지는 이익은 하나도 없다.
고린도전서의 작가도 똑같이 말하고 있다. 예언은 부동산 땅 값 오르는 소리가 아니라 교회를 진정한 교회되게 하는 것.
진정한 교회란 말이 모호한데, 그건 고린도전서 전체에서 잘 설명하고 있음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복음이란 것은 하나님 사랑 50%, 이웃 사랑 50%인데 교회를 세우는 일은 이웃 사랑에 더 가깝다. 이 교회를 세우는데는 예언이라는 은사가 유용하다.
주위에서 예언하는 사람들 한 번도 못봤다. 다 어디 갔나.. 나도 좀 만나보자. 아니면 '이제 사울도 예언하는가? 아무나 다 하네?'처럼 '하나님, 나도 예언 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