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균 양의 지인이 부친상을 당하셔서 포항을 방문했다.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나의 고향 포항.

나도 일면식이 있는 그 사람은 평소의 표정이 그랬듯이, 별로 어둡지 않았다. 유산균 양도 부친상이 있은지 3개월이 지나서야 울음을 터뜨리더라.

 

 

포항에 가면 의례히 돼랑이를 만난다. 그는 얼마 전 여친과 헤어졌다. 그래서 더 외로워 보인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사실 그는 인생살이의 외로움이 여친의 상실로 인해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대학2학년 때 아버지를 상실했다. 나의 몇 안되는 술친구인 그는 취하면 의례히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는 몇 안되는 친구 중 하나다.







포항 해맞이 공원에 새로 생긴 시립미술관에 셋이서 갔다. 건물이 으리으리하다. 천장이 높고 전면이 회색 돌판으로 마감되어 있어 진중해 보인다. 뽀대난다.


전시회도 내가 보기에 꽤 생각해야하는 컨셉이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잡고 왔다가, 아빠 저게 뭐야? 라고 물을라치면 부모는 말끝을 흐릴법한 전시회 말이다.

포항에 가면 의례히 가족을 만난다. 큰누나의 식구와 함께한 저녁식사에 우리 세친구가 부모님댁을 방문했다. 평소엔 적막한 부모님댁에 조카 세 분이 들이닥치니 서라운드 사운드에 콘서트장의 열기에 볼거리도 풍성하다.

오리고기에 닭도리탕으로 우리를 대접한 큰누나. 우리집은 경상도 집안스럽게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인생사를 나누지는 않는다. 나는 어릴적부터 별로 그런걸 해보지 않아서 유산균과 교제하면서 지금까지도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 가족의 내력인갑다. 하지만 큰누나의 대접으로 알 수 있듯이 우린 물질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데 익숙하다.




 

돼랑이가 조카들을 보는 표정을 보니 영 실감이 안나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처음엔 그의 우람한 몸집에 쫄았지만 어느새 까불거리고 야단이다. 특히 둘째 하민이의 귀여운 사투리는 한번씩 나불거릴때마다 모두 빵 터진다.

오랜만에 집에 온 나는 부모님께 직장 해고 소식을 알리지 않은 채 불안한 평화를 맛보고 있었다. 직장 해고로 인해 나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부모님의 걱정을 더 걱정해야하는 나의 처지도 가끔은 우습지만 현실이 그렇다. 내가 잘되기를 항상 바라시는 부모님, 하지만 나는 조엘 오스틴의 잘되는나 같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