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2011. 1. 2. 16:31대학교를 다닐 때 영문학 교수님이 좋아하셨던 김훈 작가.
수업 시간에도 <칼의 노래>를 읽고 에세이를 썼드랬다. 유명 작가이고 유명 작품이라는 건 들어 알았지만, <칼의 노래>를 읽는 내내 맥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은 기억은, 글에 비유와 상징이 많아서 그 사람의 작품은 글을 위한 글이라는 결론.
이번에 나온 그의 신간,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었다.
그 때에 비해 작가도 변했겠지만 나 자신도 무엇이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고요한 방, 딱딱한 의자에 앉아 무심코 눈길을 둔 방바닥에서 먼지를 발견했다. 먼지는 햇빛을 받아 오돌토돌한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누워있다. 먼지의 밝고 어두운 굴곡에서 먼지의 지난한 여정을 더듬어보려고 했지만, 먼지는 아무런 말이 없다.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아우라를 머금고, 내 마음대로 쓴 글이다. 이런 글이 작가의 표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본디부터 자연은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었는데, 어떤 인간이 그것을 보고 느끼고 인지한다. 인간과 자연의 사이에 서로의 맥락을 얽고 섥어서 또 다른 인연을 만든다.
민통선 안에서 자생하고 있는 나무와 그 낙엽 아래에서 바스러져가는 6.25 참전 용사들의 유골과 누구보다 충실하게 공무원 생활을 해왔던 주인공의 아버지가 숨을 멎어가는 모습들, 그 주변인들이 주인공의 삶에 흡수되어 가는 모습들을 작가는 평행선을 그리듯 담담하게 서술해 간다.
<내 젊은 날의 숲>의 글맛은 고급스럽다. 소리내어 읽기에도 어감에 거칠 것이 없고, 사용한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도 유난히 튀지 않으면서 오밀조밀하게 잘 섞여 있다.
글을 읽고 나면, 그 글이 품고 있는 커다란 허공이 느껴진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찌 보면 우주적인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는 듯 하면서 또 어찌보면 각각의 개인 사정이 아무런 연고없이 소개되고 있다. 단지 한 인간이 겪은 경험이라고 종합하기에는 너무나 뜬금없고 상관없기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 허공 자체가 주는 존재감을 누구든 쉽게 부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