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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

C’était François Mitterrand

자크 아탈리 지음 | 김용채 옮김

뷰스(Views) | 2006-12-11 | 양장본 544p

 

 

 

 

 

프랑스 문화원은 YTN본사 뒤편에 위치한 곳에 있다. 일정 금액을 내고 연회원이 되면, 2주일간 5권의 책이나 DVD를 대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불어 좀 보시겠다고 원서를 빌렸었지만 완독을 하지 못한 채-동화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납을 하다 보니 이번에는 번역서를 선택했다.

 

 

자크 아탈리는 누구인가?

이 분은 대통령의 측근이자 브레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유시민’을 떠올리면 쉬울 것 같다.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작가가 되리라는 열정이 컸지만 정치에도 관심을 보인 그는,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좌파가 되리라는 뜻을 세우고 정치와 연관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훗날 미테랑의 최측근으로써 대통령 집권 14년 동안 그와 단짝처럼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미테랑은 누구인가?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위기를 다스릴 줄 아는 카리스마적 리더쉽, 자신의 장례식에서야 비로소 숨겨왔던 딸이 있었다는 것이 공개되고, 집권 초기부터 암이 있었지만 이것 역시 필요할 때까지 비밀에 부치는 등, 자기관리에 강인한 면모를 보이는 점 등이 눈에 띈다. 일주일에 3~5권의 책을 꾸준히 읽고 사회민주주의 포럼에 자주 참석하고, 암 수술이 있기 전날에도 마라톤 협상을 벌이는 등, 심신의 강인한 체력도 유럽의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쵸큼 초인스러운 인상.

 

 

미테랑의 집권 1기 의의

1. 최초로 좌파정권 수립

프랑스를 대표하는 것이 혁명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부는 오랫동안 우파가 자리잡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시적으로 좌파가 정권을 잡은 적은 있었지만 그 정권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테랑은 자국내에서 좌파정권을 수립한 최초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기업이 국영화되고,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빈곤자에 대한 수혜가 늘어나고 외국인에 대한 인권도 존중되는 등, 사회가 수평상향되는 데 일조했다.

 

2. 성공적인 좌우동거체제

또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으로 좌우동거체제를 들 수 있다. 집권 기간 중, 대통령은 좌파지만 총리는 우파에서 선출되는 경우가 있었다. 사회당이 인기가 없으니까 선거에서 밀렸고, 총리 대표는 우파에서 나오게 된 배경인 듯 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상모략, 무조건 입안 반대, 까고보자는 식의 일은 그다지 없었던 듯 하다. 대통령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총리의 권한을 최대한 인정해 주었고, 따라서 정권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미테랑의 집권 2기

1. 불순한 집권동기

아탈리의 글에서 신뢰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측근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는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미테랑이 재선한 데 대해, 구체적인 공약도 없이 그가 집권한 가장 큰 이유는 우파가 정권을 잡도록 놔두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서술한다. 덕분에 사회당은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대안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당의 결집력도 신통치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2. 탁월한 리더쉽으로 유럽통합에 앞장

집권2기의 미테랑은 국내 사정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총리에게 더 많은 권한을 위임하는 대신, 그는 유럽통합, 유럽건설에 역량을 집중했다. 오른쪽으로는, 독일 통일, 소련체제 붕괴, 동유럽 민족의 독립의지의 역동이 충만했고 아래로는, 중동지역 갈등,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침공 등의 국제문제가 만발했다. 그는 프랑스가 유럽의 중심이 되어 이러한 여러 가지 갈등을 조정, 해결해 나가는데 큰 공헌을 했다.

 

 

덧, 조지 W. 부시에 관한 일화

미국 대통령 부시 일가의 첫 대통령이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는 당시 꽤 명석한 인재였던 것 같다. 미테랑과 아탈리는 그가 세습부자의 배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자세와 외교적 능력을 높이 샀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에 대한 서술을 하는 장면에서 아들이자 부시 일가의 2대 대통령이 된 조지 워커 부시가 곁다리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좀 웃긴다.

 

… 그리고 조지 부시 시니어 시대가 왔다. 미테랑은 그가 미국 부통령이었던 시절인 1981년 6월부터 자신의 프랑스공산당에 대한 입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세습부자이고 석유사업가이며 극단적 보수주의인 부시는 미테랑과 크게 달랐다. 부시는 그의 전임자와 달리 직업외교관이었다. 특히 중국지역에 관한 것을 포함한 사안들에 관해 남다른 지식을 갖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외국 대화 상대자들에게 지극한 존경을 표시했다. 그는 전임자와 달리 보좌관들이 메모해 준 것을 외우지만은 않았다.

  두 대통령 사이의 관계는 급속히 친해져 1989년 5월 20일 미테랑은 부인 다니엘과 함께 메인 주의 케넨벅포트에 있는 부시의 별장에 초대되어 사흘을 보냈다. 바닷가에 있는 넓고 수수한 집이었다. 나에게는 아들 중 한 명인 조지 주니어의 방을 내주었다. 바버라 여사는 큰아들인 그가 텍사스 레인저스 야구팀을 인수 중이고, 주말마다 케넨벅포트에 오며, 나 때문에 가구나 물건을 전혀 옮기지 않았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조지 W. 부시가 보는 책이 몇몇 만화와 탐정소설뿐이라는 것을 알고 적이 놀랐다. 그 책들 주위에는 야구방망이와 권투장갑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반면 조지 H.W. 부시 시니어의 거실 서재에는 역사와 지정학에 관한 책과 유럽문학의 모든 고전이 가득했다. …    - 314p

 

 

인용문


계획과 시장 사이, 바로 거기에 사회주의가 있다. –70p


…그는 낡은 책 제본, 낡은 곳간 수리, 연못 보수, 질긴 옷 등 오래 남는 것 외에는 돈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돈을 싫어하는 것은 경제적 속박을 거부하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경제문제에 관해 수치와 사실, 추론을 쉽게 암기하지만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에게 경제학은 부수적 자료일 뿐 정밀과학이 아니었다. 그것으로는 모든 것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어 말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는 경제학이 우파나 보수적인 고위 공무원이 정치권력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졌다. –152p


언제나 힘들여 생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이윤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 사회당원들은 개인의 성공이 당의 실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문제가 당장 드러날 것입니다. 우선 사회적 기득권을 지키는 문제입니다. 물론 우파에도 아주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반동의 힘에 의해 휩쓸릴 것입니다. 우파정부는 자기네들이 들어서도록 한 유권자, 금융업자, 대기업에 어떻게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겠습니까? … 사회당 동지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말할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계파와 분열의 영원한 유혹을 경계하십시오. … 미래를 위해 개인의 선택 이전에 집단의 선택이 앞서도록 하십시오!

- 집권2기 좌우동거체제를 앞두고, 276p

 

군대와 포로수용소에서 다른 유대인들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그 친구 생각이 나고, 그는 내 마음속에 평생 친구로 남아 있소. 그는 베르나르 피니테르요. 수용소에서 '당신의 종교는 무엇인가'라는 조사항목에 답하도록 되었는데, 그는 이렇게 답했소. '나는 유대교도다. 그렇다고 내가 종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나는 신자가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나는 유대교를 믿는다." 그리고 1941년 히틀러가 통치하는 독일에서 그는 자신의 서류에 '나는 유대교를 믿는다'고 썼소. 내 생각에 그가 그런 사실을 자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소." – 456p

 

 

열쇠글


* 팡테옹 - 사회계약론(루소), 관용과 자유의 이론을 구축(볼테르), 드레퓌스 사건의 주역(에밀졸라), 프랑스 사회주의의 창시자(장 조레스), 반나치 레지스탕스의 영웅(장 물랭), 드골의 동반자(앙드레말로)

* 바르샤바조약

* 프로이센사람, 바이에른 사람

* 프러시아

* 보스니아내전

* 이스마일 카다레 : 알바니아의 문호, 알바니아의 공산정권을 비판하는 많은 소설을 남겨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여러 차례 올랐다. 동유럽 공산권 이해의 지침서

* 비시정권

* 에르네스트 르낭 : 19세기 프랑스의 저명한 사상가, "민족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연설을 통해 민족과 민족주의의 개념을 정립했다. 19세기 유럽에 풍미한 민족주의의 실상을 들추어냈다.

* 프랑스혁명사<지롱댕의역사> – 라마르틴

* 프랑수아 퓌레: 저명한 프랑스 혁명사가. <프랑스 혁명을 이해하자>란 저서는 새로운 관점에서 혁명을 조명한 명저로 평가된다. 그는 소불.마티에즈 등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적 혁명사관과는 다른 수정사관을 제시한 역사가로 유명하다.

* 베르나르 앙리 레비: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전쟁 등 지구촌 갈등 현장을 탐사하면서 철학적으로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점을 찾는 연구방식이 독특하다.

* 피에르 부르디외: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 소회된 사람들을 위해 평생 투쟁. <빈곤의 세계>. 앵글로색슨의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반대투쟁

*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

* 아라공: 시인, 작가, 반나치 저항운동의 선봉, 대하소설<공산주의자들>, 미테랑은 좋아하지 않음

* 스타인벡, 도스파소서, 스타이런: 아메리카의 시골과 관련된 문학

리트레사전과 로베르 사전의 열렬한 독자인 그는 어원학에 열광했다.

* 미테랑을 싫어하는 롤랑르루아(1970,80년대 프랑스 공산당의 최고이론가로 당의 2인자), 르네 앙드리외(프랑스공산당 기관지<뤼마니테>사장으로 선전위원장)

* 카날플뤼스: 프랑스의 영화 전문 케이블 TV 미테랑이 허용해 시청률이 대단히 높다. 지금은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풍자하는 인형극(guignol)을 방영해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인기

* 기몰레 - 볼셰비키식 담론

* 붉은군대

Posted by 뚤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