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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삶과 실속있는 삶
뚤뭇
2010. 9. 24. 21:16
어릴 적 최고의 겉멋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었고, 지금도 대체로 그렇다.
내가 눈여겨 봐온 괜찮은 사람들, 거의가 다 그렇게 살아가고, 살다간 듯 하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만만치 않다. 이유와 목표는 다분히 순결하지만 그 안에 이질적인 뭔가가 혼합되기 쉽다. 이를테면 실속있는 삶 말이다.
실속있는 삶의 목표는 '최소물질로 최대행복을!'.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만만찮은 잔머리와 치밀한 현실적 계산력을 필수로 탑재해야 한다. 이들은 오히려 '많이 벌어 흥청망청' 주의자들보다 두뇌 회전 rpm이 높다. 겉으로는 인정받지 못할 법한 저임금+미래불안+칼퇴근(이때의 칼퇴근은 책임과 의식이 결여된 알바 분위기의 칼퇴근) 직장을 다니지만 누구보다 실속을 차리며 개인의 성을 공고히 다진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다. 탄소발자국 운운하며, 니가 뭔데 지구에 해를 끼치냐 하는 요즘의 세련된 패러다임에 적절히 응하는 인간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하게 사는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생의 많은 부분에서 무의식적인 불편을 당해야 하고 때로는 낭비해야 하며 때로는 허당처럼 보여야 한다. 그래서 가난하게 사는 것은 만만치 않다.
나는 일단 허당처럼 보이는 것에 어느 정도의 목표를 성취했다.(사실, 허당이다.)
어느새 실속있는 삶을 추구하는 나 자신을 종종 타이른다.(사실, 이미 잔머리가 안된다.)
때로는 남을 위해 낭비할 줄도 안다.(사실, 오로지 나만 위해 낭비할 뿐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좀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