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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과거와 현재

뚤뭇 2013. 6. 15. 17:48

오늘부터 여름 방학 시작!

하나님을 찾는 것부터 영적 생활을 시작해야겠다.
아침에 들은 갈라디아서 강해 말씀 중 일부를 받아쓰기 한 것을 붙여놓습니다.
들리는 대로 막 적어서 문장이 좀 거칩니다.



성도의 과거와 현재

영적인 무지는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가
종살이하도록 데려간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어떤 존재의 종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옳다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몸 밖에 없는 줄 아는 자의 종이 된다. 현대인들은 자기가 주인이다. 과거처럼 부모님을 두려워하거나 건강한 의미에서 배려하는 것보다 자기가 주인이 된다. 자기의 종이 되어 있다. 이는 곧 사망의 종이다.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일 뿐인데 우리는 살아가기만을 끝없이 바랄 뿐이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종살이 하는데로 데려간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는데 너희가 어찌 다시 종노릇하는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우리가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서 종노릇하였다. 무지가 만들어내는 종살이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초등학문
이 세상과 사람들의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과 대안을 주는 것을 가리킨다.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분석과 대안을 주고 있다. 현실에서 가장 널리 융통되는 대안, 돈을 벌고 지위와 명예와 신분을 얻는 것도 있는가 하면 윤리와 도덕의 형태로 대안을 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신과 종교의 형태를 가지고 대안을 내어놓고 있다. 오늘은 특히 과학과 기술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지식과 학문의 형태로 대안을 낸다. 이런 모든 것들을 뭉뚱거려서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한다. 이 초등학분을 갈라디아서에서는 약하고 천박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약하다.
우리에게 힘이 되지 않는다.

천박하다.
공허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내용이 빈약하다. 우리를 진정으로 명예롭고 존귀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참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
복음은 종이든 주인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신분의 어떤 변화도 일어나기 전에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은 진정한 존영과 영광이 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살아간다. 약하고 천박한 초등 학문 아래 살아가던 모습이 우리의 과거, 이것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 이것이 종살이 하는 모습. 그러나 우리의 현재는 어떤가?

우리의 종노릇 가운데 복음을 알았지만 어리석게도 율법의 교훈들을 따라서 날과 절기, 해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하고 바른 관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무지하고 악한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에게 성경은, 너희들이 어떻게 종노릇하려고 하느냐라고 반문하고 있다. 성령 하나님 안에 동행함이 무엇인지 모르면, 초등학문 아래 있는 것처럼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종노릇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우리의 죄와 악을 깨달아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의롭게 되는 생명의 길을 환영하도록 했다. 그러나 우리의 악한 영, 습관들이 허무와 악들을 보여줄때 낙심, 절망하게 되어 영원토록 종노릇 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를 정죄 아래에 가두어 놓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복음과 은혜가 얼마나 사실적인 것인지 알고 나오게 하기 위함인데 정죄와 절망과 낙심 속에 허덕이며 나올 때가 많이 있다. 여러분의 죄와 악을 볼 때 절대로 낙심해서는 안 된다. 덮으시고 씻으시고 새롭게 하시는 주의 은혜 안에 들어오라는 것인 줄 알로 절대로 낙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주 낙심할 만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도덕이나 윤리보다 훨씬 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주 낙심할 때가 많다. 우리에게 낙심이 올 때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서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로로 서는 것이다. 자포자기 하거나 낙심하는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과거가 그와 같았다면 현재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제는
현재는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신 바 되었다. 바른 앏이 특징이다. 조국 교회의 문제는 성경을 너무 모른다는 것에 있다. 여러분 중에 예수를 믿은 년수 만큼 성경 읽은 사람 있는가. 현대의 성도가 성경을 읽지 않는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설교들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대로, 성경이 말하는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일 때부터 아는 것이 대부분이지 성경이 말하는대로 아는 성도는 별로 없다. 영생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아는 것이라고 성경에 나와있다. 하나님을 알아야 영생이 누려진다고 했다. 무지함이 우리를 종살이 하는대로 데려가는 것이라면 바른 앎은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영광의 자리로 들어가는 핵심이다. 예레미야 9장에 보면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뭘로 자랑하라는 것인가? 하나님을 앎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의 도모를 보라.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다른지 말해보라. 우리의 마음에 자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성품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자랑인가?

앎이라는 것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앎이 아니다.
우리의 지식은 무엇인가. 부부가 함께 아는 것과 같은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친밀하게 사귀고 자주 만나서 알게 되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이와 같은 지식을 가지게 되는가?

주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알아가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알아갈 때, 책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말씀이 경험되고 적용되어 지는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성도의 가장 중요한 자질과 특징 중에 하나이다. 갈라디아 성도는 잘 시작했다. 그러나 거짓 성도들이 일어나자 율법에 빠지는 쪽으로 넘어갔다. 금식과 율법, 할례를 보면 훨씬 더 신앙적이고 종교적으로 보인다. 신앙이 전부 바깥에 붙어있다. 신앙이 전부 외연화되고 바깥으로 묻어서, 신앙이 바깥에 있는 것으로 바뀌어서 그 속에 진짜로 있는 영이신 하나님이 경험되고 만나는 것을 잃어버렸다. 신앙을 전부 외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오늘의 조국 교회도 많이 넘어진다. 신앙 생활이라고 하면서 현재의 성도들이 체헙을 찾는다. 오늘 조국 교회가 찾는 체험은 바깥에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은사를 구하는데 어떤 은사를 구하는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방언, 기도의 응답, 삶이 형통해진는 것을 끝없이 찾는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원래 우리를 지으셨던 대로 영이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하나님을 아는 귀한 말씀 지식이 문자로만 그치지 않고 성령의 손에 붙들려서 적응되어 지는 것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가. 오늘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마음에 품고 계시고 그 오랜 세월을 기다려서 어느 날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는 어느날 하나님을 경험하고 맛보게 되면서, 보이는 것보다 더 분명하게 믿고 의지하고 예배하는 생명의 길로 데려오셨지만 그 때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이 아니라 천지와 만물이 지어지기도 전에 그 오랜 세월을 기다려서 마음에 품고 계시다가 우리의 삶이 이와 같이 깨달아진다. 우리 인생 평생에 걸려 넘어지는 부모에 대한 원망, 어릴 때의 기억 등에 고통하는 우리의 삶에 성령으로 함께 이끌어가시면서 우리가 복종하고 순종할 때까지 인격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성도의 삶에 참된 자유가 있다. 영적으로 아주 충만한 삶이 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가.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을 보아야 한다고 만 말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기복적인 신앙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신앙을 외연화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적용시켜 주시고 성령을 물붓듯이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은혜를 누리도록 해주신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과거와 현재가 선명하게 구별되는가. 더 이상 우리의 자랑이 눈에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