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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대화란, 참, 거시기하다.

뚤뭇 2009. 12. 30. 12:25

 

그 후에 예수께서 성령께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시험을 받으셨다. 그곳에는 마귀가 대기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밤낮으로 사십일 동안 금식하며 시험에 대비하셨다. 그러다 보니 허기가 극에 달했고, 마귀는 첫 번째 시험에 그 점을 이용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 돌들한테 말해서 빵 덩이가 되게 해보아라.”

예수께서 신명기를 인용해 답하셨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시험으로, 마귀는 예수를 거룩한 도성으로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앉혀 놓고 말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뛰어 내려 보아라.”

마귀는 시편 91편을 인용해 예수를 몰아세웠다.

“그분께서 천사들을 시켜 너를 보호하게 하셨다. 천사들이 너를 받아서 발가락 하나 돌에 채이지 않게 할 것이다.”

예수께서 신명기의 다른 구절을 인용해 응수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세 번째 시험으로, 마귀는 예수를 거대한 산 정상으로 데려갔다. 마귀는 선심이라도 쓰듯, 지상의 모든 나라와 대단한 영광을 두루 가리켜 보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전부 네 것이다. 무릎 꿇고 내게 경배하기만 하면 다 네 것이다.”

예수께서 딱 잘라 거절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그리고 세 번째로 신명기를 인용해 쐐기를 박으셨다.

“주 너의 하나님, 오직 그분만을 경배하여라. 일편단심으로 그분을 섬겨라.”

 

시험은 끝나고 마귀는 떠났다. 대신에 천사들이 와서 예수의 시중을 들었다.

 

 

*  *  *

 

 

   삶의 내리막은 마귀가 만든 것만은 아니다.

   가난한 것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객관적’이라고 해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성경을 인용한 주장의 신뢰도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50%이다.

   마귀는 우리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곤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  *  *

 

 

요즘의 내 삶이 좀 그렇다는 판단하에 얼른 일을 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자문자답은 나를 ‘근면(?)’하게 만든다. 새벽기도를 할 때 잠이 오는 이유도 일을 할 수 있는 낮에 졸지 않으려는 합리적인 판단에서 비롯됐으리라. 그러나 오늘 아침의 이 말씀은 내 생각의 근원을 고발한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해결해달라고 기도 할 때면 늘 이런 마음 속에 떠오르던 생각,

“그래서 너는 나와 지금 친하니?, 말이 좀 통하는 것 같니?”

나는 종종 하나님과 포인트가 어긋나는 경험을 한다.

 

결론, 새벽기도 때 졸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