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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2-23
뚤뭇
2011. 3. 6. 21:21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소드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울반 수련회에서 화목사님이 오전에 두 시간 동안 설교를 통해 들었다.
로마의 압제 속에서 유대 사람이 하나님에게 요구했던 기존 권력의 깨어짐, 유대인의 통치권 회복 등은 중요한 테마였으리라. 지금도 이와 무방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의 기적은 오늘날의 자본주의로 바꿀 수 있다. 정당한 경쟁을 통해 정당한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은 큰 미덕이다. 경쟁과 노력, 그에 따른 합당한 결실만을 추구하는 삶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줄세우기하는 입시 제도와 선착순 달리기를 하던 군대에서 충분히 겪었다. 이제 그만.
그리스 사람 즉 헬라인으로 대표되는 열쇠글이 지혜이다. 앞서 말한 유대인들의 경쟁이 '한정된 자원'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면, 지혜는 그 한정된 자원이라는 말에 반대한다. 즉 파이를 키워서 모든 사람이 행복을 나눠 가지자는 말이다. 유대인이 보수주의, 우파라면 그리스인은 진보주의, 좌파, 평등, 연대라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 같다. 사실상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인간의 발명을 통해 재화의 생산이 급격히 늘어났다. 모든 사람에게 그 부의 혜택이 돌아갔다. 굶어죽는 사람은 그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개발도상꾸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리스인들이 시작한 이 사상은 모든 사람이 교육의 혜택을 받고 그들의 사상을 교육하는 한편, 오늘날에는 유전공학으로까지 이어졌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영원히 누리자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나가서 놀기보다, 사람을 만나기보다, 가만히 앉아서 골똘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보다 즐기는 나도 그리스인의 사상에 자연스레 동의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사상도 반대한다.
로마의 압제 속에서 유대 사람이 하나님에게 요구했던 기존 권력의 깨어짐, 유대인의 통치권 회복 등은 중요한 테마였으리라. 지금도 이와 무방하지 않은 것이다.로마의 압제 속에서 유대 사람이 하나님에게 요구했던 기존 권력의 깨어짐, 유대인의 통치권 회복 등은 중요한 테마였으리라. 지금도 이와 무방하지 않은 것이다.
성경은 힘을 추구하는 유대인과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의 사상이 인간에게 절대적인 행복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오로지 예수님이라는 신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야말로 가장 값지다고 한다. 이 일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일이었다. 예수를 시대를 구원할 메시아로 추앙하자니, 별 볼 일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기 때문에 도무지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 또한 이 일은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게 느껴지는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값진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있었으니,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과,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죄값을 치르고 형벌을 받았단는 사실과, 또한 그로 인해서 사람을 사랑하고 세우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깨달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오늘도 예수님처럼 남들에게 어리석고 거리끼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